새샘(淸泉)

서울 제1호 보호수 방학동 연산군묘 앞 은행나무 본문

동식물 사진과 이야기

서울 제1호 보호수 방학동 연산군묘 앞 은행나무

새샘 2020. 5. 2. 15:12

2013년 5월의 모습(출처-https://redphotosky.tistory.com/entry/%EC%97%B0%EC%82%B0%EA%B5%B0-%EB%AC%98-%EC%98%86%EC%97%90-%EC%9E%88%EB%8A%94-%EB%A7%89%EA%B5%AD%EC%88%98-%EB%A7%9B%EC%A7%91)

 

샛노랗게 단풍이 든 갸을철 모습(출처-https://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0399)

 

2020년 2월 새샘이 촬영한 잎이 다 떨어진 모습

서울시가 1968년 2월 지정한 제1호 보호수는 도봉구 방학동 연산군묘 앞에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

높이 25m, 줄기둘레 10.7m, 나이는 830년.

이 은행나무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노거수老巨樹로서 보호수로 지정된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은행나무는 줄기 밑둥과 큰 가지 아래에 여인의 젖꼭지처럼 생긴 유주乳柱가 생긴다(맨 위 사진).

이 유주 때문에 여인들이 은행나무 아래서 치성을 들이면서 아이 낳기를 기원한다.

 

이 나무는 나라에 큰 일이 생기거나 재난이 있을 때는 종종 원인 모를 불이 났는데,

박정희 대통령 서거 1년 전인 1978년 불이 났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나무의 영험함을 믿고서 예부터 해마다 정월대보름 때면 나무 아래서 제를 올렸다.

예전 방학동의 중심 마을이었던 원당골 토박이 파평윤씨 집안이 주축이 되어

동네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를 올린 것이다.

 

이 제사 풍습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맥이 끊겼다가 1990년대 말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젠 나무에 대한 제사 성격에서 벗어나 어르신 경로잔치를 겸한 동네장치로 변모하였다.

그 결과 원당골의 터줏대감인 이 은행나무가 방학동 사람들을 결속시킨 것이다.

 

이 나무는 1990년대 초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자

1995년 주민들이 나무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민원을 제기하였다.

2007년 주변 빌라 한 동을 철거하여 자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군데군데 지지대를 만들어 약한 줄기를 떠받치는 치료 끝에 지금과 같이 양호한 상태의 나무가 된 것이다.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로서 은행이 열리지 않는데,

동남쪽 200m 지점에 서 있던 암나무와 함께 부부 은행나무라 불렀다.

이 부부 은행나무는 몇백 년을 서로 마주보며 사랑을 나누다가

안타깝게도 암나무가 먼저 고사해 1990년대 초 베어버렸다.

 

※이 글은 사진을 제외하고는 '산림청,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 2016'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2020. 5. 2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