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미美의 변천사 본문
미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옛날에는 출산이 쉬운 큰 엉덩이와 젖이 잘 나온는 큰 가슴이 미인의 첫 번째 기준이었다.
유명한 조각상인 레스퓌그 Lespugue의 비너스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는 엉덩이가 유난히 크고 가슴이 풍만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큰 엉덩이가 미의 기준이었다는 사실은 고대 미인을 그린 대부분의 그림에서 확인된다.
시대는 다르지만 17세기 독일 태생의 벨기에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1577~1640)도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다.
그의 화폭에 담긴 주인공은 주로 뱃살이 늘어진 알몸의 여성들이었다.
라틴 민족은 북유럽 야만인들의 특징이라고 여겨 금발과 파란 눈을 아둔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소위 우윳빛 피부를 순수함과 부의 상징으로 여겼다.
흰 피부는, 피부를 태우며 들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윤택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발이 작은 여성을 미인으로 여겼다.
페루에서는 다리에 털이 난 여성이 인기가 많았는데, 원주민 혈통이 아닌 스페인 혈통의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미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1900년대 테헤란에 살았던 이란 공주 타지 에스-살타네 Tadj es-Saltaneh(1883~1936)다.
그녀는 키가 작고 발목이 굵었으며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었다.
또 엉덩이 위로 치마 밑단이 꽃부리처럼 활짝 펼쳐지는 (프로방스 식탁보와 무늬가 비슷한) 발레 치마를 즐겨 입었다.
얼굴에는 콧수염이 거뭇했고 눈썹은 막대기처럼 짙었던 그녀는 동시대 남성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페르시아 귀족 남성 46명이 그녀에게 청혼했는데, 그중 13명은 거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재능 있는 시인이자 앞선 생각을 하는 신여성이었다.
※출처: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기억 2'(열린책들, 2020)
2021. 3. 20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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