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나옹 이정 "산수화첩" "사시팔경도" 본문
자는 공간公幹, 호는 나옹懶翁, 설악雪岳인 이정李楨(1578~1607)은 이숭효李崇孝(?~?)[새샘 블로그 '화원별집2-수록 작품 소개'(2021. 2. 19) 참조]의 아들로,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작은 아버지 이흥효李興孝(1537~1593)에게서 자랐다.
그런데 이정은 문제가 많은 화가다.
그것은 이상좌李上佐(1465~?)가 이정의 할아버지라고 하는 기록들과 함께, 남태응南泰膺(1687~1740)의 ≪청죽화사聽竹畵史≫에는 이상좌는 이정의 아버지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상좌 집안 또는 이배련李陪連 집안의 자제로서 대대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였다.
삼대가 잘 그렸다고 하니까 소불小佛(이자실李自實?)[새샘 블로그 '조선 불화 이자실 관음삼십이응신도'(2020. 12. 14) 참조]―이상좌(이배련?)[새샘 블로그 '학포 이상좌 불화묵초'(2020. 12. 14) 참조]―이숭효/이흥효―이정 이렇게 본다면 삼대가 아닌 사대가 그림을 잘 그린 것이 된다.
나옹 이정은 일화가 많을 뿐 아니라 허균이 지은 ≪이정애사李楨哀辭≫도 있어서 그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있다.
그는 30세에 죽었지만, 10살이 채 안 되어 벌써 그림을 잘 그렸던 천재로 12살, 13살 무렵에는 장안사의 벽화를 그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다는 그림 신동이었다.
하지만 현재 확실히 알 수 있는 이정의 그림이 없는 것이 문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열두 폭으로 된 ≪산수화첩山水畵帖≫이 있는데, 이 그림들은 아주 훌륭하여 30대가 그렸다고는 볼 수 없는 노숙한 선미線美가 있다.
그런데 이정의 작품으로 전하는 다른 그림들은 이 그림과 매우 다르다.
지금 이정의 그림 중에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는≪화원별집畵苑別集≫에 있는 작은 크기(34.5×23.0㎝)의 <산수도>[새샘 블로그 '화원별집2-수록 작품 소개'(2021. 2. 19) 참조]가 있는데, 이 그림과 연관이 있는 작품이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 오랫동안 간직해오던[구장舊藏]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이정화첩)이다.
이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원복 씨가 연구해서 알려진 것이다.
이 그림은 그 당시 이신흠李信欽(1570~1631) 그림이나 허주虛舟 이징李澄(1581~1653 이후) 그림과 비슷한 데가 있어서 역시 그 시대의 산수가 아닌가 생각되며, 이정의 작품과 비교적 가깝다고 본다.
반면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열두 폭 ≪산수화첩≫은 도저히 이정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어서 문제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이정은 그 명성에 비해서 그 사람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정의 그림이 아주 적기 때문에 판명이 대단히 어려운데, 대표작은 되지 않지만 기준작은 ≪화원별집≫에 나온 것이 되지 않을까 한다.
또 하나 ≪근역서화징≫을 보면 이정이 중국에 갔다 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과연 중국에 가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도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정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림을 잘 그려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떤 권세 있는 사람이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자 그 집에 뇌물이 들어가는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화가 나 잡으려고 하니 평양으로 도망갔다가 거기서 죽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그러나 유명한 일화가 있을 뿐이지 어느 정도 대표작을 그렸는 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각 화가들의 대표작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유감이다.
앞에 등장했던 이계호(1574~1645 이후)의 <포도도>[새샘 블로그 '휴휴당 이계호 포도도'(2021. 3. 16) 참조]나 안견의 <몽유도원도>[새샘 블로그 '현동자 안견 몽유도원도'(2020. 12. 3) 참조] 같은 그림이 있어야 그 작가에 대하여 제대로 알 수가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전傳 안견 그림을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표작이란 그런 것인데, 이런 대표작 그림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경윤李慶胤(1545~1611)도 그런 대표작을 볼 수 없고[새샘 블로그 '학림정 이경윤 산수인물도 외(2021. 3. 3) 참조] 이정 또한 대표작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그 사람들의 그림 솜씨를 정확히 평가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며, 작품을 논할 때마다 아주 뼈아프게 느끼는 점이다.
※출처: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021. 3. 24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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