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공중보건 본문
공중보건公衆保健 public health이란 정부가 공공기관으로서 일반 대중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공중보건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기 위해 영국으로 가보자.
1662년 엘리자베스 여왕 Queen Elizabeth 시대에 가난한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엘리자베스 구빈법救貧法 The Elizabeth Poor Law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1800년대에 이르러 빈민이 전 국민의 10%를 차지하자 더는 그들을 돕지 말자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었다.
영국 사회학자 토머스 맬서스 Thomas Robert Malthus(1766~1834)는 저서 ≪인구론≫에서 빈민의 생계를 국가에서 도와주는 법의 단점을 지적했다.
빈민들이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돕는 것이 모든 이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맬서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든 생물은 본능적으로 필요 이상의 후손을 남기려고 한다. 험한 환경속에서 질병이나 사고로 자식들을 일찍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부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식을 낳고자 하기 때문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반면에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천천히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인구수가 질병과 전쟁, 빈곤 등에 의해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고 계속 늘어난다면 식량 부족으로 모든 인구가 비참한 미래를 맞게 될 것이다. 같은 이유로 자연스럽게 조절되어야 할 빈민 수가 인위적인 빈민 지원 정책으로 계속 늘어난다면 결국 빈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맬서스의 주장처럼 빈민 수가 많이 늘어나 구빈정책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해지자 정부는 지역별 빈민 수를 비슷하게 유지·관리하기 위해 '거주 및 이주 제한법'을 만들었다.
빈민이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지 못하게 한 법이었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영국 남부의 농업 지역은 점점 쇠퇴해갔기 때문에 일할 곳이 부족해 빈민이 더욱 가난해졌고, 영국 북부의 공업 지역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공장이 자꾸 늘어나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구빈법의 개정을 위한 왕립위원회가 꾸려졌다.
여기에 에드윈 채드윅 Edwin Chadwick(1800~1890)이 있었다.
왕립위원회가 생각한 빈민이 가난한 이유는 바로 게으름이었다.
빈민이 나라의 도움으로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게 되자 게으른 빈민이 더욱 늘어났고, 그들을 돕기 위해 나라의 돈을 더 많이 써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왕립위원회는 스스로 일할 수 있는 빈민을 더는 돕지 않기로 하는 대신 그들이 어디든 가서 일할 수 있도록 이동을 제한하는 법을 삭제했다.
그러자 공장이 밀집한 도시에 일자리를 원하는 빈민이 몰려들었다.
도시인구가 늘어나자 당연히 살 집이 부족해졌고, 빈민들은 급하게 대충 만든 간이주택에 몰려 살았다.
빈민 지역이 늘어나자 돈이 있는 부자들은 도시를 떠나 공기가 좋은 외곽으로 빠져나갔고, 빈민 지역은 더욱 관리가 안 돼 도시의 위생상태는 더욱더 나빠졌다.
에드윈 채드윅은 이 상황을 꼼꼼히 점검했다.
그는 직접 각 지역을돌며 도시 빈민, 도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했다.
본인의 눈으로 그들이 어떤 곳에 사는지 보았고, 그들의 집에서 나는 악취를 직접 맡았다.
하수구를 들여다보고, 화장실 분뇨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더러운 물이 배수관을 통해 잘 빠지는지 살폈다.
그는 가난이 유발하는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채드윅은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빈민의 게으름이 가난의 원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불결한 주거환경이 빈민들의 질병을 유발하고, 질병 때문에 일을 못 해 그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가난이 질병의 원인이었고, 질병이 가난의 원인이기도 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채드윅은 질병을 예방해 빈민이 가난해지는 것을 막는다면 결과적으로 빈민에게 지원하는 정부의 자금 부담 또한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질병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채드윅은 나쁜 공기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쁜 공기를 발생시키는 빈민가의 악취를 제거하기로 했다.
그는 빈민 노동자들의 가정환경 주변에 있는 하수와 오물을 제거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환기를 철저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8년 동안 채드윅은 구빈법 담당 공무원이 아닌 빈민 노동자들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앞장서는 환경운동가, 공중보건운동가로 변신했다.
그 결실이 1842년 나온 ≪영국 노동 계급의 위생상태에 관한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게으름이 가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 환경이 질병을 만들고, 그것이 가난함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자세한 사례와 통계를 바탕으로 꼼꼼히 보여주었다.
채드윅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노동자와 빈민의 질병을 관리하고, 그들의 거주환경을 국가와 국가와 정부의 책임 아래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학의 역사를 통한 가장 중요한 결론을 도출한 보고서였다.
보고서를 토대로 1848년 공중보건법 Public Health Act이 5년 시한부로 시행되었고, 영국 중앙보건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공중보건법 자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채드윅은 끊임없이 지방정부의 공무원들과 싸워야 했고, 여러 곳에 상하수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땅을 소유한 자본가들의 악의에 찬 비난을 들어야 했다.
여론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1854년 결국 5년 동안의 활동을 끝으로 채드윅의 중앙보건위원회는 해체되었다.
그의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후임자들에 의해 채드윅의 정책은 꾸준히 실현되었다.
1860년대에 이르러 채드윅의 위생시스템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많은 나라에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1875년,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영국에서 시한부가 아닌 정식 공중보건법이 확정, 공표되었다.
※출처
1. 김은중, '이토록 재밌는 의학 이야기'(반니, 2022)
2. 구글 관련 자료
2024. 11. 20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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