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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다산 정약용 "매조도"

새샘 2025. 1. 4. 15:04

"저 흐트러짐 없는 글씨에서 그분의 인품을 본다"

 

정약용, 매조도,1813년, 비단에 담채, 44.7x18.4cm, 고려대 박물관(출처-출처자료1)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그림에 대한 식견은 있었지만 거기에 마음을 둔 바는 없었다.

그러나 그림이라는 것이 화가의 전유물이 아닌지라 다산은 자신의 마음에 이끌려 몇 폭의 그림을 그렸다.

 

그중 다산이 강진 유배지에서 제작한 <매조도梅鳥圖> 시화축은 다산 그림과 글씨의 백미이다.

이 한 폭에 유배객 다산의 외로운 삶이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13년 7월 14일, 그러니까 다산 나이 52세, 강진에 유배된 지 13년째 되는 해에 동암東菴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했다.

그림을 보면 매화 가지에 앉아 있는 한 쌍의 새가 조용한 필치로 단정하게 그려져 있다.

붓의 쓰임새가 단조롭고 먹빛과 채색의 변화도 구사되지 않았건만 그림에는 애잔함이 감돈다.

여기에 덧붙인 시에는 처연한 고독감이 서려 있다.

 

"파르르 새가 날아 내 뜰 매화에 앉네     (편편비조翩翩飛鳥 식아정매息我庭梅)

향기 사뭇 진하여 홀연히 찾아왔네      (유열기방有烈其芳 혜연기래惠然其來)

이제 여기 머물며 너의 집으로 삼으렴  (원지원서爰止爰棲 낙이가실樂爾家室)

만발한 꽃인지라 그 열매도 많단다    (화지기영華之旣榮 유분기실有賁其實)"

 

유배지에 홀로 사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날아든 새에게조차 함께 살자고 조르는 다산의 심사를 알 만도 한데 글씨는 단정하면서 빠르게 흘려 써서 애절한 마음이 절절이 흐르는 것 같다.

 

시화축 끝에는 자신이 이 축을 만들게 된 사연을 작은 글씨로 써넣었는데 그 내용은 더욱 쓸쓸하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한 지 몇 년 됐을 때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가져온) 폐백 치마 여섯 폭을 부쳐왔는데, 이제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 빛이 가셨기에 가위로 잘라서 네 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 나머지로 이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준다.

(여적거강진지월수년余謫居康津之越數年 홍부인기폐군육폭洪夫人寄幣裙六幅

세구홍투歲久紅渝 전지위사첩剪之爲四帖 이유이자以遺二子 용기여用其餘 위소장爲小障 이유여아以遺女兒"

 

누구들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겠는가.

<매조도> 시화축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이란 절절한 감정에 근거할 때 제빛을 내고, 그 감정이 깊고 오랜 것일수록 감동이 크다고 말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의 이런 고독한 귀양살이를 생각할 때 그의 18년 귀양살이에는 비록 '강요된'이란 단서를 붙인다 해도 감히 '안식년'이란 단어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출처
1. 유홍준 지음, '명작 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주)눌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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