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경복궁의 우리 나무 5 - 이팝나무 본문


5월은 아이들의 눈망울처럼 해맑고 화창하다.
갓 나온 싱그러운 연초록 새잎은 생명이 아름답다는 것을 새샘 느끼게 한다.
어린이날을 조금 지나 봄날이 더욱 따사로워질 즈음,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 하얀 꽃이 잔뜩 피는 나무가 있다.
이팝나무다.

꽃은 가느다랗게 4갈래로 갈라지며 꽃잎 하나하나의 모습은 마치 뜸이 잘 든 밥알처럼 생겼다.
가지 끝마다 원뿔 모양의 꽃차례가 달려 잎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무 전체를 뒤덮는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옛사람들에겐 이팝나무 꽃의 모습이 수북하게 올려 담은 흰쌀밥 한 그릇과 닮아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쌀밥의 다른 이름인 이밥을 붙여 '이밥나무'라 하다가 '이팝나무'가 되었다.
이팝나무의 꽃 피는 때가 대체로 음력 24절기의 입하 전후이므로, 입하 때 꽃이 핀다는 뜻으로 '입하나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먼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사연을 가진 이팝나무들을 찾아가본다.
전북 진안 마이산 서남쪽 마령면의 마령초등학교에는 이팝나무 고목 몇 그루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아기사리'라는 옛 아이들의 무덤 터다.
옛날 마령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죽으면 야트막한 동구 밖 야산이었던 이 자리에 묻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배불리 먹지 못한 탓에 영양실조에 시달리다가 죽었고,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가슴앓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작은 입에 흰쌀밥 한술 마음껏 넣어준 적이 없는 슬픔에 통곡하던 부모들은 죽은 아이의 영혼에게라도 흰쌀밥을 마음껏 먹일 방법을 생각했다.
꽃 피는 모습에서 이밥을 상상하고는 이팝나무를 심어두면 두고두고 아이의 영혼이 배불리 먹을 것이라고 믿었다.
"살아서 못 먹은 밥, 죽어서라도 배불리 먹거라!"
그래서 아이를 묻고 돌아선 부모들이 이팝나무를 한 그루씩 갖다 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어린 영혼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이밥'이 달리는 이팝나무 숲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그러나 1920년 개화의 바람을 타고 학교가 들어올 즈음, 아무도 지켜주지 않은 아기사리는 학교 부지로 편입되어 버린다.
슬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이팝나무들은 이때 대부분 사라지고 몇 그루만이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로 겨우 보호받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이팝나무는 잎갈 넓은잎 큰키나무로 다 자라면 높이가 20~30미터에 이르고 줄기 둘레는 두세 아름을 훌쩍 넘는 큰 나무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가지를 넓게 펼칠 뿐만 아니라 오래 살아서 마을 앞의 쉼터 나무로 흔히 심었다.
옛 선비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나무였지만 주로 한자로 쓴 그들의 시문집에 이팝나무는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팝나무의 한자 이름으로 알고 있는 육도목六道木은 일본 도쿄(동경東京)의 한 거리 이름에서 따온 일본 한자이며, 유소수流蘇樹는 꽃이 늘어지면서 핀다는 뜻의 중국 이름이다.
나무에 무슨 귀족 나무가 있고 서민 나무가 있겠냐만 굳이 따진다면 이팝나무는 분명 배고픔의 고통을 아는 대표적인 서민 나무다.
사람들이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심고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들어서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극복한 오늘날, 이팝나무는 어렵던 시절을 되돌아보는 풍요의 상징으로 점점 더 각광을 받는 것 같다.
이팝나무는 중국 남부와 일본의 극히 제한된 지역에서도 자라지만 분포 중심지는 우리나라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다같이 '국가 II급 보호식물'이며 세계적으로도 희귀 식물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 7곳을 포함하여 고목만 100여 그루가 넘는다.
자라는 지역은 경북 포항, 대구, 전북 고창을 잇는 선의 남쪽과 충남 당진을 거쳐 북한의 황해도 옹진에 이르는 서해안, 즉 한반도의 중남부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지금은 서울의 궁궐과 청계천과 같은 중북부 지방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


어린 줄기의 나무껍질은 황갈색이고 얇게 벗겨지나 나이를 먹은 나무껍질을 회갈색으로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기로 달리고 타원형이며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다.
표면에는 매끈한 광택이 있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의 모양이나 크기가 언뜻 보면 감나무와 닮았다.
굵은 콩알만한 열매는 처음에는 짙은 푸른색이었다가 9~10월에 흑청색으로 익어 겨울까지 계속 달려 있다.
우리 이팝나무 이외에 최근 수입된 버지니아이팝나무 Chionanthus viginicus가 있다.
꽃 피는 시기가 우리 이팝나무보다 늦어 6~7월이며 꽃이 훨씬 크고 화려하다.
잎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이 많이 피며 향기가 강하다.
최근에 정원수로 드물게 심고 있다.
※출처
1. 박상진 지음, 궁궐의 우리 나무, 개정2판 2쇄 발행((주)눌와, 2017).
2. 구글 관련 자료
2026. 8. 11 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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