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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 장승업 "호취도" "쌍치도" "수탉" 본문

글과 그림

오원 장승업 "호취도" "쌍치도" "수탉"

새샘 2023. 6. 22. 19:12

장승업, 호취도, 종이에 담채, 135.5x55.3cm, 삼성미술관 리움Leeum(사진 출처-출처자료1)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은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이 역관 이응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 이응헌이 소장하고 있던 수장품, 변모卞某라는 역관에 집에 있던 중국 고화들, 그리고 장안의 명가 집안에 전하는 중국 그림들을 보면서 혼자서 터득했음에도 조선왕조 5백 년에서 손꼽을 수 있는 화가인 3원園(단원檀園 김홍도·혜원蕙園 신윤복·오원吾園 장승업) 3재齋(겸재謙齋 정선·공재恭齋 윤두서 또는 관아재觀我齋 조영석·현재玄齋 심사정)의 여섯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천재로 평가받는다.

 

오원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대담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면서 예술에서 중요한 독창성과 창조성이 아주 뛰어난 화가였다.

 

오원의 대표작이라 할 수있는 <호취도豪鷲圖>호방豪放하고 장쾌한 기상의 독수리(수리, 취鷲)[취를 매라고 해설한 자료가 훨씬 많지만, 鷲는 수리 '취'이고, 매는 한자로 '응鷹'이다] 두 마리가 심하게 뒤틀린 위아래 나뭇가지에 앉아 서로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다.

호방한 붓놀림을 드러내기에는 어린 나무보다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뎌낸 듯 껍질이 두껍고 거칠거칠한 고목이 제격이다.

 

갑자기 화폭에 선득하니 차가운 바람이 인다.

그것은 자연의 바람이 아니라 기인 장승업이 큰 붓에 진한 먹물을 듬뿍 묻혀 사납게 그리고 순식간에 휘둘러 댄, 고삐 풀린 천성의 자유분방함이 일으킨 회오리바람이다.

필치에 속도감이 느껴지는데, 일필휘지一筆揮之란 말이 딱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에너지를 일시에 쏟아낸 듯 순식간에 완성한 작품 같다.

붓을 들어 완성하기까지 전혀 멈추지 않고 붓질을 계속했으리라.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주만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도를 잡고 소재를 배치하고 붓질을 결정하는데 긴 시간이 할애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독수리 깃털 하나하나에서부터 바위와 나무를 표현하기까지 세심한 정성을 기울였다.

억세고 날카로운 독수리의 이미지는 몰골법沒骨法(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먹이나 물감을 찍어서 한 붓에 그리는 화법)과 담채淡彩(엷은 채색) 바탕 위에서 극대화된다.

오원은 독수리의 민첩함과 강한 기운을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색을 절제했다.

현란한 색으로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것보다 독수리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마리 독수리의 자세가 다르듯 독수리가 앉은 나뭇가지도 서로 다르다.

위쪽 가지에 앉아 눈매에 살기가 등등한 독수리는 아래를 굽어보며서 당장에라도 먹잇감을 향해 날개를 펼칠 듯 온 몸에 긴장감이 팽팽하다.

나뭇가지도 독수리의 몸짓을 닮아 각이 심하게 꺾였다.

아래쪽 가지에 앉은 독수리는 한 발을 든 채 위를 치켜보며 주변을 구경하는 여유를 부리면서 화면을 완전히 장악학고 있다.

나뭇가지도 독수리처럼 편안하게 뻗어있다.

어느 하나 틀에 맞춰 그린 것이 없으니, 과장과 왜곡은 분명하다.

화면에 놓인 모든 구성 요소들이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넘쳐나는 이 생명력은 무엇인가?

 

<호취도> 명나라의 궁정화가 임량林良(1416?~1480)과 오원의 선배 화가인 혜산蕙山 유숙劉淑(1827~1873)의 매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오원이 전통에 정통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평가하듯 일자무식인 그가 어쩌다 운이 좋아 재주를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는 수많은 명화들을 보고 배우면서 결코 대가들의 이름에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기량과 개성을 충분히 살릴 줄 알았다.

오원은 임량과 유숙의 매를 참고하여 온전히 자신만의 독수리를 창조했다.

임량의 매는 지나치게 먹을 많이 사용해 화면에서 받는 느낌이 무겁지만 오원의 독수리는 상쾌하다.

유숙의 매는 ‘참새를 겨냥하는 매’의 전통을 비판 없이 계승했지만 오원은 그 전통에서 과감히 탈피해 ‘두 마리 독수리’를 그렸다.

전통을 계승하되 자기식의 해석으로 새로운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장승업의 <호취도>가 유숙과 임량의 매를 넘어 매나 수리 그림의 꼭대기에 걸릴 수 있는 이유다.

 

화면 왼쪽 위 화제는 오원 작품의 화제를 많이 쓴 향수香壽 정학교丁學敎(1832~1914)는 오원의 심사를 잘 알아 굵고 가늘게 퉁길 듯 날아갈 듯 변화무쌍한 필획들을 번드쳐 쌩하는 삼엄한 소리를 내는 듯한 글씨체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내려갔다.

 

"땅 넓고 산 드높아 장한 의기 더해 주고 (지활산고첨의기 地闊山高添意氣)

 마른 잎에 가을 풀 소리 정신이 새롭구나 (풍고초동장정신 楓枯艸動長精神)"

 

독수리 그림 <호취도>는 아래 소개된 한 쌍의 꿩 그림 <쌍치도雙稚圖(또는 치순도雉鶉圖)>와 대련을 이룬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고양이 그림 <유묘도游描圖>(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와 말 그림 <삼준도三鵔圖>(일본 유현재 소장)등 네 폭이 함께 그려진 병풍 그림이었다고 한다.

 

 

장승업, 쌍치도, 종이에 담채, 135.5x55.3cm, 삼성미술관 리움Leeum(사진 출처-출처자료1)

 

한 쌍의 꿩을 그린 그림 <쌍치도雙稚圖>는 꿩과 메추라기 그림으로 여겨 <치순도雉鶉圖>라고도 하는데, 한 쌍의 꿩 그림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훨씬 더 많다.

 

<호취도>에서 언급했듯이 삼성미술관 리움에는 <호취도>와 <쌍치도>가 같이 걸려 있어 서로 대응되게 새나 짐승을 그린 두 개의 그림인 <영모도 대련 翎毛畵 對聯>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이 두 그림은 <영모도 대련>이 아니라 이 두 그림과 함께 고양이를 그린 <유묘도>(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와 말 그림 <삼준도>(일본 유현재 소장) 등 네 폭이 한 병풍에 그려진 '네 폭 병풍도'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꿩(치雉)은 우리나라 텃새로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새로서, 옛부터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동물로 인식되었다.

조선시대 중요한 나라 의식 때 왕비가 입던 예복인 대삼大衫(적의翟衣)은 붉은 비단에 138쌍의 청색의 꿩을 수놓아 만든 것으로 민간에서 사용할 수 없는 예복이었다.

이처럼 꿩은 왕족의 위엄과 권위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꿩은 민화에서 많이 그려졌는데 이는 높은 지위에 올라 고귀한 신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 아닐까.

<쌍치도>의 구도는 앞에 소개한 독수리 그림 <호취도>와 비슷하다.

장끼(수꿩)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아래쪽 까투리(암꿩)는 흘끗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다.

<호취도>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장끼가 앉은 나뭇가지가 뻗어나온 방향이 <호취도>의 방향과는 반대인 오른쪽에서 뻗어나왔다는 것 정도이다.

이렇게 두 그림의 나뭇가지를 반대 방향으로 배치한 것은 두 그림이 하나의 그림처럼 어우러지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그린 것이 아닐까.

 

 

장승업, 수탉, 족자, 종이에 담채, 140.2x43.2cm, 개인(사진 출처-출처자료1)

 

<수탉(일명 계도鷄圖)> 그림은 세로로 긴 화폭 한가운데 고목같으면서도 괴석 같기도 한 그루터기 위에 수탉 한 마리가 좌측을 향해 왼발로 서 있다.
화폭 오른쪽 벼랑에서 뻗어 올라갔을 나뭇가지 하나가 담묵淡墨(묽은 먹물)으로 꺾이면서 화면 위쪽의 휑한 공간을 적절하게 메우고 있다.
바위 오른쪽에서 또 하나의 꺾인 나뭇가지가 예리한 필선으로 간략히 묘사되고, 맨드라미나 영지 같은 것이 바위 뒤로 화폭을 가로 지른다.

 

오원의 예사 기법과는 상당히 다르게 차분하면서 담묵에 주묵朱墨(붉은 빛깔의 먹)을 엷게 섞어 닭과 꽃, 나뭇잎 등을 같은 필치로 묘사한 것은, 영모도에서 동물과 식물간의 기법의 차이를 보이는 전통적 화법과는 다르다.

화면 아래쪽 왼쪽 구석에 
"오원 장승업이 임양거사법을 좇다(오원장승업무임양거사법 吾園張承業撫林良居士法)"라고 써 있다.

 

※출처
1. 이용희,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문화재청, '장승업, 틀을 깬 자유분방한 사유의 세계',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26285&bbsId=BBSMSTR_1008&pageUnit=10&searchtitle=title&searchcont=&searchkey=&searchwriter=&searchWrd=&searchUseYn=&searchCn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mn=NS_01_09_01 (호취도) 

3. 오주석,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월간미술, 2009)(호취도)

4. https://nrpark.tistory.com/13748382 (쌍치도)

5. http://www.towooart.com/oldart/old_korea/jangseungyub/jangsy_13.htm (수탉)

6. 구글 관련 자료

2023. 6. 25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