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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이용희 "한국 근대회화 백년전에 즈음하여" - 1. 기준작 및 그림 됨됨이 본문

글과 그림

동주 이용희 "한국 근대회화 백년전에 즈음하여" - 1. 기준작 및 그림 됨됨이

새샘 2023. 8. 24. 23:23

출처자료1의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의 안쪽 표지(사진 출처-영풍문고http://www.ypbooks.co.kr/book.yp?bookcd=100849358)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내준 전시회 도록을 여기 오기 전 훑어 보았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전시된 회화의 역사적 의미나 내용에 대해선 안휘준 교수와 이구열 선생의 훌륭한 글이 있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어차피 여러분도 그 글을 보실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대로 중복을 피하여고 하면서 앞서 말씀드린 명강연의 본을 따라 혀가 돌아가는 대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아리송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런데 먼저 서론격으로 여러분에게 몇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나라 자기민족의 그림을 볼 때는 알게 모르게 애국적 또는 애족愛族적 입장에 서게 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나는 소년 때부터 그림보기를 좋아했는데 때는 일제강점기라, 이왕이면 우리나라 그림을 방에 걸어 놓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가짜일지도 모르는 손바닥만한 겸재 정선 그림을 한 장 얻어 가지고 압정으로 벽에 꽂아놓고 애족적인 감상에 도취되었었죠!

그리고 우리나라 그림을 누가, 특히 일본인이 헐뜯는 이야기를 하면 그만 감정이 격해서 견디질 못했습니다.
상당히 세월이 흐른 뒤에도 어쩐지 남의 그림보다는 내 민족 것이 좋다는 전제를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 두고서 쭉 그림을 보았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이 꽤 계실 줄 압니다.

그후 이 사람이 그림에 대해 조금 안목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 다음에야 그림 외의 일로 생기는 눈이 점차로 가시드군요.

그래서 이제는 그림 그 자체의 됨됨이 문제지 그림의 국적이라든가 또는 그림의 회화적인 것 외의 것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그림, 중국 그림, 일본 그림, 그리고 서양 그림 등이 별로 회화 외적 편견에 잡히지 않고, 좋은 것은 좋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까닭에 아마 오늘 내가 말씀드리는 가운데 회화 외적 의미에서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지 않을까 겁도 납니다.

그리고 그림 그 자체를 본다 하는 경우에 문제되는 것은 어느 작가 또는 어느 시대 그림의 기준작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말하지면, 한 작가의 작품은 그의 조형 능력이 가장 잘 나타났다고 생각되는 작품, 또는 한 작가라도 창작의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는 그때그때의 우수작을 기준으로 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준작을 모르는 경우는 그 작가에 대한 평가를 하기가 대단히 곤란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전해지는 작품이 적은 옛 그림(고화古畵)의 경우는 작품 판단이 매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여기 전시회 도록에 나와 있는 작품, 그러니까 약 100년 동안의 화가의 그림을 보니까, 내 생각에는 아마 절반 가까이가 기준작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습니다.

기준작을 모으기가 힘든 것이죠.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여기 나와 있는 그림을 갖고 그 화가의 역량을 품평한다는 것이 매우 위험스럽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점도 말하기 겁이 납니다.

 

다음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기준작일 경우도 수준, 곧 그림의 됨됨이를 어느 수준에 두고 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그림을 우리나라 작품들의 수준에서 볼 것이냐 아니면 같은 소재 같은 기법을 사용하던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 두루 타당한, 말하자면 국제적 수준에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는 좋은 그림의 평가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전통적 동양화도 넓은 시야에서 그 수준을 정하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라마다 그림의 특징이 있습니다만 동시에 전통회화로서의 국제적인 수준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씀드리는 것도 기준작을 그린 국제적 수준에 연관시켜 보겠습니다.

따라서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준작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 온당한 평가가 어려울 수도 있고 또 국제수준에서 볼 때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경우도 나올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때로 귀에 거슬리는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점 용서하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림은 소재, 용구와 기법에 철저한 제한을 받습니다.

우리나라 전통회화는 우선 종이의 질, 화견畵絹(그림 그리는데 쓰이는 비단), 심지어는 종이도 중국의 선지宣紙냐 장지壯紙냐, 숙지熟紙냐 생지生紙냐,(비단)은 화견이냐 아니냐 등등은 물론이묘, 먹과 붓은 어떤 것을 쓰고 또 안료顔料는 어떤 것을 쓰느냐에 따라 그림의 효과가 대단히 다른데, 그것이 모두 우리나라에서 과거 자급되던 것이 아니어서 이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옛분들이 보시는 전통 그림은 이 조건 아래서 제작하는 미의 세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근대회화 백년전 近代繪畵 百年展>의 말미 때에는 서양화법이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 올 땐데, 그 서양화는 다른 소재와 용구, 기법을 조건으로 한 다른 종류의 회화미의 세계였습니다.

마치 시조時調의 정형定型에서 신시新詩의 발생으로 가는 문학감상의 교잡이 있었듯이 회화미의 창조와 감상에 있어서도 교잡이 있었습니다.

 

앞에든 재료, 용구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선 겸재 정선 같은 사람의 그림에서 여러분이 자주 대할 것입니다.

먹이 먹지 않는 장지에다, 때로는 삼베(마포麻布)에다 그린 그림을 보게 됩니다.

후자의 경우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전통적인 '산수' 형식이 아닌 이른바 실경이라는 '풍경화'를 보게 됩니다.

나는 가끔 겸재가 화선지에 산수를 친 경우와 지금 시중에서 자주 보듯 장지에 친 산수를 머리 속에서 비교합니다.

그리고 정통기법으로 새로이 도입되는 '풍경화'라는 새로운 것의 미감을 살리려고 애쓰는 화가의 모습을 생각하고 또 이 전시회에서 목도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접하게 되는 전시장의 작품에서 이 전통의 고수固守와 드디어 다가오는 변화의 현장을 목도하게 됩니다.

 

※출처

1. 이용희 지음, '우리 옛 그림의 아름다움 - 동주 이용희 전집 10'(연암서가, 2018)

2. 구글 관련 자료

 

2022. 8. 24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