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샘(淸泉)

2023. 10/28(토)~29(일) 1190차 경주 진짜 칠순 기념 여행 첫날 본문

여행기-국내

2023. 10/28(토)~29(일) 1190차 경주 진짜 칠순 기념 여행 첫날

새샘 2023. 11. 3. 16:52

여행로: (10/28)서울교대역 1번-(전용버스)-경주 명성한식당-불국사-양남 주상절리-문무대왕릉(대왕암)-감은사지 삼층석탑-대본항 갈매기횟집-(10/29)갈매기횟집-경주보문관광단지 보문호반광장과 보문호-동궁과 월지-대릉원-별채반 교동쌈밥-(전용버스)-서울교대역

*아래 지도에서 지명 뒤에 붙은 번호는 탐방 순서.

 

산케들: 重山 부부, 百山 부부, 空華 부부, 淸泫 부부, 동우부부, 大仁 부부, 長山 부부, 慧雲 부부, 새샘 부부, 素山, 法泉, 東峯, 如山, 大谷, 元亨(24명)

 

협찬: 正允 50만 원, 素山 발렌타인 30년 산 1병과 오미자 샴페인 1병, 慧雲 청보화제과 쿠키 30팩, 重山 의성단감 1상자.

 

 

올해 만 나이로 칠십이 되는 산케들의 진짜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산케봉사부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1박 2일 일정의 부부 동반 경주 여행이었다.

이날 21명의 산케들은 교대역에서 전세 버스를 타고 세계문화유산도시이자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로 향했고, 중산 부부와 동봉은 경주 불국사에서 만날 예정.

이번 경주 탐방은 두 번째로서, 16년 전인 2007년 4월 430차 산행 때 부부 동반 42명이 남산과 토함산을 등정한 바 있다.

 

경주慶州는 서기전 57년 신라 건국부터 935년 신라 멸망 때까지 935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다

고구려와 백제가 수도를 여러 번 옮긴 데 비해, 신라 수도는 이름만 금성이나 서라벌 등으로 바뀌면서 경주 한곳에서 천여 년 동안 이어왔음은 이례적이다.

 

정각 8시에 교대역을 출발한 전용버스는 신갈역에서 백산 부부를 태우고서 고속도로 휴게소 몇 곳을 거친 다음 출발 5시간 반만인 오후 1시 23분 첫 목적지인 불국사 앞 불국사 상가시장의 명성한식당 주차장에 도착.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중산 부부와 동봉이 반갑게 맞아준다.

 

점심 메뉴는 대표 메뉴인 산채불고기정식에 시원한 경주법주쌀막걸리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나서 불국사를 구경하러 나섰다.

 

불국사 상가식당의 마가렛(마거리트) Marguerite 꽃밭.

 

토함산 아래 자리 잡은 조계종 불국사(사적 제502호)는 1995년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흔히 김대성이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지만,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528년(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연제부인延帝夫人(삼국유사에는 영제부인迎帝夫人)이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751년(경덕왕 10) 당시 재상 김대성은 불국사를 대규모 중창하면서 지금의 석가탑과 다보탑, 청운교와 백운교 등을 축조함으로써 오늘날 불국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김대성의 불국사 중창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그리고 석굴암(당시 석불사) 창건은 전생의 부모를 위한 것이었다.

김대성이 죽은 뒤인 774년(혜공왕 10)에 불국사의 대규모 중창이 마무리되었다.

 

2시 31분 불국사 일주문과 세계유산 불국사 인증 표석

 

불국사 일주문 앞에서 24명 모두가 함께 모여 만든 인증샷!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의 불국사 풍광.

관음송은 몸통줄기가 여러 개의 가지로 나뉘어 부채꼴 모양으로 자라는 둥근소나무(반송盤松)로서 나이가 100살을 넘었다.

 

반야연지

 

천왕문

 

천왕문을 지나면 만나는 자하문은 대웅전 앞에 있는 중문中門이며, 자하문으로 올라가는 2단으로 된 돌계단이 국보인 청운교(아래쪽)와 백운교(위쪽)다.

 

자하문 앞에서도 인증샷.

 

대웅전 중문인 자하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 오른쪽 옆길로 돌아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2개의 탑 앞에서 바라본 불국사 대웅전과 앞마당에 있는 대웅전 좌우에 있는 석가탑(서쪽인 왼쪽)과 다보탑(동쪽인 오른쪽) 모습들.

 

보물 대웅전은 앞면 5칸, 옆면 5칸의 단층 팔작 기와지붕 건물이며, 지금 건물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중창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모양의 두 탑 석가탑과 다보탑을 같은 위치에 좌우로 나란히 세운 것은 현재불(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불(과거의 부처)인 다보불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의 목조석가삼존불상(가운데 현재불 석가여래좌상, 왼쪽 미래불 미륵보살입상, 오른쪽 과거불 (제화)갈라보살입상竭羅菩薩立像), 그리고 양쪽 끝에 서 있는 석가모니 제자인 가섭존자(왼쪽)와 아난존자(오른쪽) 소조상塑造像(찰흙이나 석고로 만든 상).

가운데 석가여래좌상 뒤에 걸린 정사각형에 가까운 후불탱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는 1769년에 제작된 것으로 좌우 벽에 그려진 사천왕 벽화와 함께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식 명칭이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인 국보 제21호 석가탑(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은 높이 10.75m로서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때인 751년 다보탑과 같이 축조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2층 기단을 가진 대표적인 삼층석탑으로 평가 받는다.

1966년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 있던 부처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 공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진 국보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을 찾았다.

없어져버렸던 석가탑의 머리 장식(상륜부)은 1973년 남원 실상사의 보물 동·서삼층석탑에 있는 머리 장식을 본따서 복원한 것이다.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 해서 무영탑無影塔이라 불렸던 석가탑에는 석가탑을 건축한 백제 석공 아사달을 찾아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혜운회장, 원형대장, 새샘주필 등 봉사부 셋이 석가탑 주변의 울타리에 걸터앉아 기념촬영.  

 

국보 20호 경주 불국사 다보탑多寶塔은 높이가 석가탑보다 50cm 정도 낮은 10.29m이며 석가탑과 같은 일반적인 석탑이 아닌 그 층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특수형 석탑이다.

열 십十자 모양의 평면 기단에는 사방으로 돌계단을 만들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했고,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전통적인 삼층석탑에다 법화경』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석탑으로서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라고 평가된다.

 

첫날 경주 시내에서의 첫날 탐방은 불국사가 마지막 일정이어서 불국사에서 전용버스로 숙소가 있는 경주 동해안에 있는 탐방지로 갈 것이다.

다만 대구로 가는 중산 부부와 부산으로 가는 동봉과 작별하고서 21명의 산케만 경주 동해안 탐방지로 향한다.

오늘 들리지 못한 경주 시내 관광은 내일 오전에 재개될 것이다.

 

오후 3시 20분 불국사 주차장을 출발한 전용버스는 1시간을 달려 경주 양남 주상절리의 남단인 하서항에 4시 20분 도착.

 

양남 주상절리는 경주시 양남면 양남항구길 중 남쪽 하서항에서 북쪽 읍천항까지 조성된 약 1.7km 해안 덱길인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여유롭게 걸으면서 해안에 산재된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군을 조망할 수 있다.

 

양남 주상절리는 2012년 양남면 읍천리에 있던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숨겨져있던 보물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주상절리는 화산암 지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위로 솟은 육각형 돌기둥을 뜻하는데, 이곳 주상절리는 위로 솟은 모양 뿐만아니라 둥글게 펼쳐진 부채꼴 모양, 기울어진 모양, 누워있는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돌기둥이 분포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군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희귀한 것으로 인정 받아 201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하서항에 설치된 주상절리 안내판을 읽고서 이정표를 따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로 들어선다.

 

누워 있는 주상절리군(오른쪽)과 위로 솟은 주상절리군(왼쪽).

 

누워 있는 주상절리군

 

위로 솟은 주상절리가 잘라져 토막난 것으로 여겨지는 주상절리군

 

기울어진 주상절리군(오른쪽)과 누워 있는 주상절리군(왼쪽)

 

기울어진 주상절리군

 

누워 있는 주상절리군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

 

앞에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 바로 뒤 방파제 등대가 있는 곳이 읍천항.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데크 전망대에서 인증샷

 

데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해안과 주상절리 전망대 모습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해안의 기암

 

위로 솟은 주상절리군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해안의 또다른 기암

 

주상절리 전망대 직전 파도소리길에서 뒤돌아본 해안 풍광

 

오늘 탐방한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의 종점인 주상절리 전망대를 오른다.

 

4층 전망대 안

 

4층 전망대 창을 통해 내려다본 걸어왔던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남쪽 풍광

 

4층 전망대 창을 통해 내려다본 해안의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군

 

인터넷에서 찾은 전망대 2층 야외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군(사진 출처-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s://www.gyeongju.go.kr/tour/page.do?mnu_uid=2695&con_uid=1690&cmd=2)

 

4층 전망대 창을 통해 내려다본 북쪽 파도소리길 해변과 읍천항

 

전망대를 내려와 광장에서도 파도소리길 해변을 한번 더 감상.

 

전망대 광장에 서 있는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 안내판

 

전망대 광장에서 북쪽으로 조망한 읍천항 방파제 등대

 

전망대 광장 해안 절벽에 핀 해국 꽃

 

주상절리 전망대 앞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북쪽 해안으로 20분을 올라가 5시 22분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대왕암 해변에 도착했다.

봉길대왕암 해변이란 이름은 이곳 지번이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奉吉里이기 때문에 붙었다.

봉길대왕암 해변은 문무대왕면을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드는 대종천大鍾川 하구 남쪽 해수욕장이다.

 

사적인 경주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은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으로서 봉길대왕암 해변에서 200m 떨어진 암초를 이용해서 해중릉海中陵이기 때문에 대왕암大王巖이라고도 불린다.

대왕암은 암초인 자연 바위 안에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어 바닷물이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바닷물이 항상 잔잔하게 흐르도록 만들었다.

해수면 위로 동서 35m, 남북 36m, 높이 5.3m 정도 노출되어 있는 대왕암은 수면 아래 길이 3.7m, 폭 2.1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 모양의 돌이 덮혀 있으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봉길대왕암 해변과 문무대왕릉 모습

 

봉길대왕암 해변의 파노라마 풍광

 

문무대왕릉과 봉길대왕암 해변 남쪽 풍광

 

문무대왕릉과 봉길대왕암 해변 북쪽 풍광.

왼쪽 끝에 보이는 마을이 경주시 감포읍 대본항이다.

 

봉길대왕암 해변에서 문무대왕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오늘 묵을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문무대왕릉과 아주 가까운 대종천 좌안에 있어 차로 3분도 채 걸리지 않는 국보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들렀다.

감은사지에는 앞뜰에 동서로 2개의 석탑 즉 쌍탑이 나란히 서 있어서 정식 명칭은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동·서 삼층석탑이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엄숙하면서도 기백이 넘치는 탑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금동 사리기(보물)와 금동 사리외함(보물)이 발견됨으로써 건축연대가 확인되었다.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석탑을 대표할 만하다.

 

5시 38분 주차장에서 올라가면서 바라본 감은사지 삼층석탑 모습.

 

감은사터 앞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삼층석탑 쌍탑. 왼쪽이 서탑이고 오른쪽이 동탑이다.

 

앞쪽 계단을 올라와서 바라본 삼층석탑

 

감은사 터에서 발견된 돌들을 석탑 뒤쪽에 한데 모아놓았다.

 

5시 42분 컴컴해지기 시작하면서 야광조명이 켜졌다.

앞에서 바라본 삼층석탑 야경.

쌍탑 사이 뒤쪽에 느티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다.

 

동탑 바로 오른쪽(동쪽) 옆에서 바라본 동탑과 느티나무 고목

 

동탑 오른쪽에서 바라본 동탑(서탑은 동탑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과 감은사지.

탑 오른쪽에 보이는 줄을 매달아 놓은 곳이 절터에서 발견된 돌들을 모아놓은 자리다.

 

탑 뒤쪽에서 바라본 3층석탑

 

5시 55분 감은사지 3층석탑을 출발하여 숙소가 있는 민박집으로 출발.

감포항 민박집이라고 했는데 버스가 출발한 지 5분만에 운전승무원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게 아닌가!

알고보니 숙소는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대밑)의 대본항에 있으며, 흔히 말하는 감포항은 여기서 북으로 9km 떨어진 감포읍 감포리(감포항구길)이다.

 

처음 가보는 대본항은 아주 소박하고 아담하고 평화로운 어촌마을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가성비 높은 식당(저녁식사, 아침식사)과 민박이 연계되어 있다는 것!

 

어부인들 숙소인 갈매기횟집의 민박집 1층.

 

위 민박집에서 10m 거리에 있는 산케들이 머무를 민박집 2층.

 

저녁 식사 하러 갈매기횟집으로 가면서 대본항의 야경을 구경.

 

2층이 식당인 갈매기횟집(이날 저녁 식당 사진을 찍지 못해 다음날 아침식사하러 가면서 찍은 사진).

 

저녁 7시 싱싱한 자연산 생선회를 상추나 깻잎이 아닌 미역, 다시마, 청각, 톳과 같은 해초에 싸서 먹으니 그야말로 색다른 맛!

 

8시 13분 저녁을 배불리 먹은 다음 대본항을 한바퀴 산책하고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대본항에서 포즈 취한 Eight Queens!

 

숙소 발코니에 마련된 테이블에 모여 건배한 다음에야 비로소 방으로 들어가는 유쾌상쾌한 산케들!

2023. 11. 3 새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