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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한 손에 쥐고 솔솔 부치면... <겸재 정선, 금강내산도, 조선 18세기 중반, 종이에 수묵, 부채 28.2×80.5㎝, 간송미술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가 막 피는 연꽃봉오리인 양 눈부시게 환하다. 줄지어 선 화강암봉이 꽃이파리라면 그 사이로 길게 음영을 드리운 계..
솔 향기 사이로 무엇보다 미쁘고 정다운 벗들의 음성 <이인문, 송계한담도 松溪閑談圖, 조선 19세기 초반, 종이에 수묵담채, 24.3×33.6㎝, 국립중앙박물관> 깎아지른 석벽 앞 평평한 냇가에 모처럼 세 벗이 모였다. 두 사람은 앉아 있고 한 사람은 등을 보인 채 옆으로 기댔는데 낙락장..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는 2011년 '행복한 한국인의 특징'에 대한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센터에서는 20대, 40대, 60대 각 200명 등 총 600명을 대상으로 2년 동안 설문 추적조사를 실시하여 평가하였는데,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 타인을 신뢰한다 - 남과 ..
한 남자가 보물을 찾아 나섰다. 한참을 가다가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 도달했다. 한쪽길로 가면 보물이 나오고 다른 길로 가면 괴물을 만나서 죽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어느 길로 가야 보물이 나오는지 모른다. 각각의 길 앞에는 기사가 한 사람씩 서 있다. 그에게 어디로 가..
죽음은 7억 년 전에 출현했다. 40억 년 전부터 그때에 이르기까지 생명은 단세포에 한정되어 있었다. 단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분열을 통하여 똑 같은 형태로 무한히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산호초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단세포 체제의 흔적..
하루 맑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가 신선이라네 <이재관, 오수초족도, 조선 19세기 초반, 종이에 수묵담채, 122×56㎝, 삼성미술관 리움> 나른한 초여름 오후 하늘 사위가 고즈넉한 날, 나이 지긋한 선비 한 분이 깜빡 낮잠이 들었다. 걷은 휘장 사이로 살펴보니 평상 위에 놓인 책 더미에 ..
함초롬한 고운 여인, 마음자락에 스며들 듯 <신윤복, 미인도, 조선 19세기 초반, 비단에 채색, 114.2×45.7㎝, 간송미술관> 함초롬한 여인이 다소곳이 섰다. 손을 대면 부서질 듯 고운 아낙. 초승달 눈썹과 촉촉한 눈매가 꿈꾸는 듯하고, 반듯한 이마와 넓은 인당印堂이 시원해 마음 설렌..
현대 한국어 발음으로 '고리' 또는 '구려'라는 말은 이전부터 나타나지만 '고구려'라는 말은 에 처음 등장한다. 즉 한무제 원봉3년(기원전 108) 한나라는 조선을 멸망시키고 다음해 4군을 설치하는데 현도군에 고구려현이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에 대하여 "꼬우리(구려)의 별종이 소수 유역에 나라를 세웠으므로, 그 이름을 따서 소수맥이라 했다"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꼬우리'는 '까오리'를 표현한 말이다. 왜냐하면 ≪양서≫(636)에서는 '고구려', '구려', '고려'가 함께 사용되었는데, 특히 '구려'라는 명칭이 많으며 모두 아홉번이나 된다. 그리고 ≪북사≫(659)에서는 "고구려는 그 선조가 부여에서 나왔다"라고 되어 있어 '까오리'에서 나온 부여 내의 신진세력들이 좀 더 민족적..
"난초가 어물전에 간다면" 소동파蘇東坡(1037~1101, 북송시대의 시인, 이름은 식軾, 동파는 호)가 어느 날 난초 그림을 보았다. 난蘭은 가슴 설레도록 아름다웠다. 시심에 겨워 그는 시 한 수를 지었다. "춘란은 미인과 같아서 (춘란여미인 春蘭如美人) 캐지 않으면 스스로 바치길 부끄러워하지 (불채수자헌 不採羞自獻) 바람에 건듯 향기를 풍기긴 하지만 (시문풍로향 時聞風露香) 쑥대가 깊어 보이지 않는다네 (봉애탐불견 蓬艾深不見)" -양차공의 춘란에 쓰다 (제양차공춘란 題楊次公春蘭)- 제발로 찾아오는 미인은 없다. 향기를 좇아가도 웬걸, 쑥대 삼대가 가로막아 만나기 힘들다. 미인과 난초..
천 개의 바위 다투어 빼어나고, 만 줄기 계곡물 뒤질세라 내닫는데 걸작 를 바라보노라면 영락없이 귓전을 울려오는 소리가 있다. 바로 판소리 '수중가' 중의 중중모리 '고고천변皐皐天邊'인데, 자라가 뭍에 올라 난생 처음 명산구경을 하는 대목이다. "예 구부러진 늙은 장송 광풍을 못이겨 우줄우줄 춤을 출 제 원산은 암암暗暗 근산은 중중重重 기암은 층층 매산每山이 울어 천 리 시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쭈루룩 저 골 물이 콸콸 열의 열두 골 물이 한데 합수쳐 천방저 지방저 월특저 방울저 방울이 버큼저 건너 병풍석에다 마주 꽝꽝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그렇다. 만폭동도는 음악이다. 넓은 계곡을 휩쓰는 골바람이 온 산을 한 무리 악사로 여겨 한결같은 장단으로 흔들어대면, 탄력 넘치는 붓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