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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말했다. "여봐, 방금 자네 친구에 대해 어떤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소크라테스가 그의 입을 막았다. "잠깐만! 내게 그 얘기를 해주기 전에 우선 시험을 세 개 통과해 줬으면 좋겠네. 3개의 체라는 시험일세." "3개의 체?" "나는 타인에 대한 얘기를 듣기 전에는 우선 사람들이 말할 내용을 걸러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네. 내가 ‘3개의 체’라고 부른 시험을 통해서지." "첫 번째 체는 진실의 체일세. 자네가 내게 얘기해 줄 내용이 진실인지 확인했는가?" "아니. 그냥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었을 뿐이야." "좋아. 그럼 자네는 그 얘기가 진실인지 모른다는 말이지." "그럼 두 번째 체를 사용하여 다른 식으로 걸러 보세. 이번에는 선의 체일세. 내 친구에 대..
바다의 방랑자 플랑크톤 물고기의 먹이인 ‘플랑크톤(plankton)’이 많은 대륙붕에서 어장이 형성된다. 플랑크톤이란 이름은 1887년 독일의 헨젠이 ‘방랑자(wanderer)’라는 뜻의 라틴어를 이용해 명명한 이름이다. 즉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방랑자 생물을 가리키는 것..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강희안, 조선 15세기 중반, 종이에 수묵, 23.4×1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길다란 덩굴 몇 가닥을 흔들흔들 그네 태운다. 그러자 잔잔하던 물 위에도 결이 고운 파문이 인다. 바위에 기대 편안히 엎드린 선비는 볼..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을 보고 있노라면 시나브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근엄한 표정의 선비를 보고 왜 웃는지 궁금하면, 또다른 그의 초상과 한번 비교해보자. 작가 미상인 아래의 은 머리에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상반신에 흉배 붙인 단령團領을 입고 각대角帶를 둘렀으니, 이게 바로 예를 갖춘 조선의 관복이다. 그런데 위의 에서는 평복 두루마기에 오사모만 덜렁 썼으니, 이건 신사복에 운동모자를 쓴 것과 정반대지만 우습기는 매한가지다. 정조(재위 1776~1800) 때 예술계를 주름잡은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 강세황, 저 유명한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라는 분이 왜 이런 장난을 치셨을까? 머리의 좌우 여백에 빼곡히 쓴 찬문贊文은 강세황 자신의 글씨인데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 사람이 누구인고? 수염과 눈썹이 ..
어떤 실험에서는 관찰자가 관찰대상의 조건을 변화시켜 완전히 왜곡된 정보를 얻어내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마귀에 대한 실험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통설에 따르면 사마귀의 암컷은 짝짓기가 끝난 뒤에 수컷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이 잔인한 짝짓기는 학자들의 환상을 부채질했고, 그 결과 사마귀를 둘러싼 생물학적이고도 정신분석학적 신화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 속설의 배후에는 사마귀의 행동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자리하고 있다. 사마귀의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것은 자연상태에 놓여 있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암컷은 교미가 끝나면 원기를 회복하고 알을 낳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얻기 위해 주위에 있는 먹이를 닥치는 대로 삼킨다. 그런데 이 사마귀들이 관찰용 유리상자에 갇혀서 짝짓기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교미가..
태극太極이란 자연의 질서 그 자체로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을 뜻하며, 낮과 밤, 여름과 겨울, 남성과 여성, 삶과 죽음 등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상대적 요소 즉 음陰과 양陽이 원만한 조화를 이루며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이렇게 볼 때 음과 양이 가장 그릇된 예는 바로 우리의 태..
1. 소야笑野 신천희(현존 승려이자 시인)의 <술타령> 2.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술 취해 부르는 노래(醉歌行취가행)> 두 미친 손님이 서로 마주앉아 하루종일 술을 마시네 (長日一尊酒 相對兩狂客 장일일존주 상대양광객) (중략) 만약 그대가 미쳤다면 진정한 나의 친구일세 (汝若狂眞我友 ..
스파이더맨처럼 벽과 천장에 붙어 기어오를 수 있는 도마뱀붙이(위 사진)의 하나인 레피도닥틸루스 루구브리스(Lepidodactylus lugubris)는 필리핀, 호주 및 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작은 도마뱀붙이는 이따금 태풍에 휩쓸려 날아가서 무인도에 떨어진다고 한다. 수컷이 그렇게 되는 경우에..
"거친 바람 속, 끝까지 남는 건 대나무의 정신이어라" 바람이 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화폭 가득 세차게 부는 바람. 어린 대나무는 그 바람에 밀려 줄기가 활처럼 휜다. 매몰차게 부딪치는 바람은 댓이파리들을 일제히 파르르 떨게 한다. 이파리는 곧 끊어질 듯 끝이 파닥이며 뒤집힌다. 화폭 한중간 유난히 길고 가는 잔가지 하나, 이제라도 곧 찢겨 나갈 듯 위태롭다. 하지만 저 기세를 보라! 쭉쭉 뻗어 올라간 줄기는 아래서 위로 갈수록 먹색은 흐려지지만 기백은 더욱 장하다. 잎은 위로 갈수록 더 짙고 무성하며, 낭창낭창한 잔가지는 탄력 속에 숨은 생명의 의욕으로 넘실댄다. 그렇다 첫눈에 가득했던 것은 거친 바람이었지만 끝까지 남는 것은 끈질긴 대나무의 정신이다. 대나무는 풀도 아니요 나무도 아니다. 그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