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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고삐 풀린 자유로운 천성, 예술 속에서 살아나다" <호취도,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 담채, 135×55㎝,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장쾌한 기상을 지닌 독수리 그림 <호취도豪鷲圖>를 보라! 갑자기 화폭에 선득하니 차가운 바람이 인다. 그것은 자연의 바람이 아니다. 기인奇人 장승업..
"따사롭고 살가운 어머니 사랑"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비단에 수묵담채, 94.4×44.3㎝, 국립중앙박물관> 양지바른 뜨락 큼직한 괴석 곁에 찔례꽃 향기로운 날, 나비며 벌들 꽃 찾아 분주한데, 어미 토종암탉이 병아리 떼를 돌본다. 자애로운 눈빛이 또로록 구르는가 했더니 부리에 작..
"호쾌한 선들을 관통하는 고매한 기상" 다음은 임진왜란이 끝난지 40년 만에 재개된 조선 인조때인 1636년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김명국이 처음으로 동행하면서 자신이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병자년(1636년) 12월22일, 맑음, 저녁에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중략) 이들이 왜 내가 그린 달마도에 열광하는지를 이제 알 것 같다. 선종이 무엇인가? 경전이나 문자에 의지하기보다는 직관적인 정신적 체험을 중요시하는 것이 선종이 아닌가? 자신이 세운 화두를 깨닫기 위해 일생을 거는 종교가 선종이 아닌가? 그래서 얻게 된 깨달음의 순간을 일필휘지로 그려 내는 것이 바로 선종화다. 그렇기 때문에 선종화에서는 다소 거칠고 부족하더라도 세세하게 꾸미거나 채색을 칠하는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
"어이할꼬! 도둑고양이 잡으려다 우리 영감 먼저 잡겠소" 란 '들고양이(야묘)가 병아리(추) 훔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린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1754~1822)은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불린다. 이게 왠 소동이냐! 한가로운 시골집의 고요와 평화를 깨는 일대사건이 벌어졌다. 검정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노란 병아리를 그만 잽싸게 채서 달아난 것이다. 깜짝 놀란 어미닭이 눈에 시뻘겋게 독이 올라 날개를 파닥거리며 죽을 각오로 고양이에게 덤벼들고, 나머지 병아리들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꼭꼬댁 꼭꼬꼬꼬", 화급한 암탉 비명소리에 자리 짜던 영감이 벌떡 일어나 긴 담뱃대를 내뻗어 후려치려고 하지만 역부족인지 굳은 몸이 말을 들을리 없다. 그대로 고..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가 가장 나이 들어 그린 그림인 는 보기드물게 사람의 뒷모습 그것도 스님의 뒷모습을 그린 초상화다. 그래서 초상화라기보다는 선화禪畵에 가깝다. 초상화는 얼굴에 그 사람의 인격을 그려내야 하는데 비해, 뒷모습 초상화는 뒷머리와 뒷모습에 인격을 그려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리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뒷모습은 가식이 없다. 정직하고 진실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뒷모습은 한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춰 준다. 역광으로 어른거리는 노승老僧의 가냘픈 등판, 그 위로 파르라니 정갈하게 깎은 뒷머리가 너무나 투명해 눈이 시리다. 고개를 약간 숙인 스님은 참선 삼매에 들었는가! 수척한 어깨뼈가 만져질 듯 장삼 아래 반듯하게 정좌하였다. 노승은 연꽃인..
"꾀꼬리에 앗긴 선비 마음, 봄이, 영원한 봄이 그 안에 있다" 따사로운 봄날 점잖은 선비가 말구종 아이를 앞세우고 길을 나섰다. 오른손은 고삐 쥐고 왼손엔 쥘부채를 반쯤 펴 가볍게 들었으며, 종아리엔 가뿐하게 행전을 쳤고 두 발은 발막신을 신어 슬쩍 등자에 걸쳤다. 알맞게 마른 먹선으로 가늘게 그은 옷의 윤곽선은 이 양반의 옷매무새를 더없이 깔끔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말 꾸밈은 수수해서 번거로운 방울 하나 달지 않고, 등자 뒤 다래조차 그저 민패일 뿐이지만, 다래 오른편에 드림 한 줄이 길게 늘어져 풍류가 넘친다. 사위는 고즈넉해서 보이는 것은 오직 한 줄기 좁은 길과 길가에 선 버드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잡풀 무더기뿐이다. 왠지 날이 따뜻하게 느껴진는 건 아마도 버드나무 잔가지가 굽이쳐 능청스런..
이 소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앙일보의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이란 글에서 문득 눈에 띈 제목이 전부다. 난 악기는 잘 모르지만 클래식은 즐겨 듣는 편이고, 도서관은 비교적 자주 출입하는 편이라서 내가 관심있는 두 단어가 조합된 소설 제목이 나의 눈길을 이끈 것이다. 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땐 장편인 줄 알았었다. 제목이 이었으니 말이다. 안쪽 차례를 들여다 봤을 때 이 제목을 비롯한 여러 제목이 있어 비로소 단편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단편을 읽을 때는 내가 관심있는 제목의 글부터 먼저 읽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을 먼저 펴서 읽기 시작하였다. 소설을 읽는 도중이나 다 읽고 난 후에 든 느낌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건 음악, 그것도 악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넘어 너무도 사랑하고 ..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비로운 수가 하나 있다. 142,857이 바로 그것이다. 1)먼저 이 수에 1부터 6까지를 차례로 곱하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자. 142,857×1=142,857 142,857×2=285,714 142,857×3=428,571 142,857×4=571,428 142,857×5=714,285 142,857×6=857,142 이렇듯 언제나 똑같은 숫자들이 자리만 바꿔가며 나타난다. 142,857×7은? 999,999이다! 142,857×8=1,142,856이다. 이 수는 1과 142,856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두수를 더하면 142,857이 된다. 142,857의 제곱은 20,408,122,449이다. 이 수는 20,408과 122,449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수를 더하면..
"그대는 어찌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처럼 변함이 없는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그린 는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정수精髓'라는 칭호가 따라 붙는다. 문인화란 선비들이 그리는 그림으로서 그림 자체보다는 그림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더욱 중요시한다. 정조대까지는 사대부 그리고 중인, 평민 계급의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진경산수화나 풍속화가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죽은 후부터는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는 급속히 사라지고 사대부들이 자신의 뜻을 담아내기 위해 그린 그림인 문인화만이 옛그림으로서의 계보를 근근히 잇게 되었다. 결국 정조 사후의 조선에는 예술성이 돋보이는 옛그림은 미미해져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왜 가 문인화의 정수인지 확인해보자. 는 '추운 시절을 그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