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글과 그림 (796)
새샘(淸泉)
고대문명의 신비를 발견하는 이야기라면 당연히 현장을 누비며 활약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고고학자가 그런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니다. 시대의 한계로 연구실에서 평생 과거의 유물을 연구하여 세계적인 발견을 한 사람도 있다. 바로 중남미의 마야문자를 해독한 소련 학자 유리 크노로조프 Yuri Knorozov를 두고 하는 얘기다.,크노로조프는 마야의 유적과 실물 자료는 보지 못한 채 평생을 좁은 골방에서 오로지 문헌 자료만 몇천 번 반복해 보면서 대서양 건너 머나먼 중남미의 마야문명 Maya civilization을 풀어냈다.이집트 문자를 해독한 프랑스의 장프랑수아 샹폴리옹 Jean-François Champollion에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크노로조프는 냉전의 시대에 살았다는 이유로 소련과..
● 번거롭고 값비싼 대변검사·내시경검사 대신할 간편한 검사 ● 혈액에서 암세포 및 폴립 세포의 DNA를 추적하는 방식 ● 조기 발견률 83%로 결장암 사망률 73% 줄일 수 있어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대장암을 조기 발견해 사망률을 73%까지 줄일 수 있는 검사법이 개발되었다고 미국 뉴욕타임즈(NYT)가 3월 1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미국 의학저널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에 혈액 내 대장암 세포의 DNA 조각을 추적하는 실드 Shield라는 이름의 혈액검사법(Shield Blood Test) 논문(N Engl J Med 2024; 390:973-983 DOI: 10.1056/NEJMoa2304714)이 게재되었다. 이..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은 1330년대와 1340년대 몽골에서 중국, 북부 인도, 중동, 크림반도 Crimean Peninsulat에 이르기까지 확산된 치명적 질병에 대해 16세기 이후 붙여진 이름이다. 1346년 질병은 흑해에 도달했고, 1347년 제노바 Genova(영어 Genoa)의 갤리선 Galley(고대와 중세에 걸쳐 지중해를 운항하던 대표 선박으로서 노橈젓기 및 돛(범帆)에 부는 풍력으로 운항)이 부주의하게도 질병을 흑해에서 시칠리아 Sicilia(영어 Sicily)와 북부 이탈리아로 옮겼다. 흑사병—영어의 '흑사병 plague'이란 말은 동시대인인 그 질병을 라틴어로 '타격 plaga'이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은 이탈리아를 출발해 교역로를 따라 서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는데, 먼저 ..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가 숙종 연간의 뛰어난 문인화가라는 사실에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학자에 따라 조선 중기의 마지막 화가로 언급되기도 하고 후기의 선구적인 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구시대의 막내이자 신시대의 선구였기 때문이다. 공재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사항 하나는 그가 화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실학자였다는 사실이다. 그가 조선 후기 속화俗畵(풍속화)의 선구가 된 것은 그의 학자적 삶의 과정이자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공재가 이룩한 회화적 업적을 올바로 평가하기 힘들다. 공재는 해남윤씨 명문가 출신으로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고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할아버지이다. 당색은 남인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26세 때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당쟁이 심해지면서 남인에게는 출셋길이 열..
스키타이 Scythia를 비롯한 유라시아 유목민의 황금은 전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아에서 해외 전시를 주로 하는 대표적인 황금 유물이기 때문이다. 이 스키타이의 황금 유물은 지금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린 소련 시절인 1991년에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한소수교 1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전시회였다. 당시 소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burg에 있는 예르미타시 박물관 Hermitage Museum이 소장한 황금을 중심으로 203점을 전시했는데 냉전의 시대였던 당시로선 상당한 파격이었다. 이 전시회는 한달이 좀 넘는 전시 기간 동안 15만 명 가까운 사람이 찾아 큰 호응을 거두었다. 공교롭게도 전시회가 폐막되고 한달 후에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소련과 한..
4부 중세에서 근대로 서론 20세기 역사가들 대부분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Italian Renaissance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Protestant Reformation이야말로 중세를 종식시키고 근대 세계를 활짝 연 유럽사의 극적 분기점이라고 설명한다. 분명 16·17세기에는 유럽인의 삶에 결정적 변화가 있었다. 유럽의 선원, 병사, 상인 등은 범세계적인 교역망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서반구의 풍부한 광물과 농업자원을 대서양 항구로 가져왔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유럽의 종교적 통일성을 깨뜨렸고 종교전쟁의 한 세기는 그 분열을 한층 고착화시켰다. 한편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새로운 문화적·지적 흐름은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그러나 16·17세기에 이루어진 새로운 발전의 대부분..
어느 시대에나 기인奇人(별난 사람)이나 괴짜가 있다. 사회적 관행과 통념으로부터 일탈한 이들의 행동은 많은 일화를 남기면서 그 시대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반영해준다. 기인과 괴짜는 대개 특출한 재주를 갖고 있는 강한 개성의 소유자로 사회적 부조리에 날카롭게 대항하기보다는 낭만적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회화사에는 3대 기인이 있다. 17세기 인조 때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1600~1662년 이후), 18세기 영조 때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12~1786?), 19세기 고종 때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화가로서 타고난 천분을 갖고 있으면서 환쟁이 또는 중인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기행을 일삼았고, 술로써 자신을 달랬던 주광酒狂이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이..
세계의 지붕 티베트 Tibet(시짱/서장西藏)는 그 험난한 산세만큼이나 신비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들의 독특한 예술세계,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20세기에는 서구 열강에, 21세기에는 중국에 핍박 받아온 티베트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하지만 신비의 뒤편에는 무지가 있었다.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그동안 우리가 아는 티베트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이름만 알려져 있던 티베트 최초의 국가인 '상웅국象雄國'과 3500년 티베트의 역사가 밝혀졌다. 티베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산지대에 사는 유목민의 후예로서, 아시아 일대의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며 독특한 히말라야 문명을 일궈낸 사람들이다. 티베트 고대문명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티베트 최초..
중세 전성기의 문학은 다양하고 생동적이고 인상적이었다. 성당 학교와 대학에서 문법 공부가 부활되자 몇몇 뛰어난 라틴 시가 탄생했다. 가장 좋은 예는 세속 서정시, 특히 12세기의 골리아르 Goilard라고 불리던 방랑시인들이 쓴 것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골리아르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악마의 추종자'란 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해석은 적절한 것 같다. 왜냐면 방랑시인들은 기도문을 풍자적으로 개작하고 복음서를 희화화한 시끄러운 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서정시는 변화하는 계절의 아름다움, 길 위의 태평스런 생활, 술 마시고 노는 즐거움, 특히 사랑의 즐거움을 찬미했다. 쾌활하고 풍자적인 시를 쓴 그들은 주로 유랑 학생들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오늘날 그림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감상화, 장식화를 생각하지만 카메라가 없던 시절 그림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사진을 대신하는 시각적 기록이었다. 초상화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와 더불어 옛사람들은 모임을 가진 다음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야유회 가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마음의 소산이다. 조선 전기에는 그런 기념화로 계회도契會圖가 성행했다. 계契/稧는 사대부들이 친목을 위해 시와 술을 즐기며 어울린 모임으로 수계修契라고도 한다. 역사적 유래로는 4세기 동진東晉의 왕희지가 소흥紹興/绍兴 난정蘭亭에서 41명의 명사들과 어울린 난정수계蘭亭修契, 8세기 당唐나라 백거이를 중심으로 한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 12세기 송宋나라 사마광을 중심으로 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 등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