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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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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파스퇴르 Pasteur(1822~1895)에게 새로운 의뢰가 들어왔다.의뢰인들은 누에의 병 때문에 고생하는 양잠업자들이었다.그들은 누에의 알이 부화하지 못하고 부화해도 금방 죽어나가자 파스퇴르를 찾아온 것이었다.파스퇴르는 일단 건강한 애벌레를 A와 B의 두 무리로 나누어 대조 실험을 시작했다.A 무리에게는 병들어 죽은 애벌레로 문지를 뽕잎을 먹이고, B 무리에게는 건강한 애벌레로 문지를 뽕잎을 먹였다.그러자 A 무리의 애벌레에게만 병이 나타났다.파스퇴르는 병든 A 무리 애벌레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작은 미생물을 발견했다(파스퇴르는 이 미생물을 자신의 이름을 붙인 '파스퇴우렐라 뮬토치다 Pasteurella multocida'라고 명명했다).곧바로 미생물에 감염된 누에들을 구분해 분리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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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것도 다시 있을 것이며이미 한 일도 다시 하게 될 것이니세상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나니." -> 1장 9절- ○우리의 과거는 매일 변한다 고고학考古學 archeology이 다른 어던 학문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자료로 과거들을 공부하기 때문이다.고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인 이유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고학은 더욱 더 진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사람들은 흔히 고고학을 마치 먼지구덩이의 유물만을 꺼내는 고물상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유물이 예전 것이기 때문에 고고학자들도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생각은 마치 노인들을 진료하는 병원의 의사도 똑같이 늙고 기술은 낡았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과 같다.실상은 다르다.고고학은 첨단과학의 각축장이다.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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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서론 (잉글랜드 England에서 왕정이 회복되고 프랑스 France에서 루이 14세의 통치가 시작된) 1660년에서 (프랑스 혁명 French Revolution이 일어난) 1789년까지의 시기를 전통적으로 절대주의絶對主義 시대 the Age of Absolutism라고 일컫는다.절대주의란 통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영토 안에서 완전한 통치권을 요구하도록 고취시키는 정치이론이었다.17세기와 18세기의 절대주의자들에게 완전한 통치권이란 통치자가 다른 어떤 통치 당국의 공식 승인을 받을 필요 없이 자기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사법권을 행사하며, 관료제를 만들어 이를 지휘하고 전쟁을 선포하며,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의미했다,때때로 절대 권능의 주장은 자신의 가정에 대한 가장의 절대 권위와 동일한 신성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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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만큼 인간에게 양가감정兩價感情(모순감정: 어떤 대상, 사람, 생각 따위에 대하여 동시에 대조적인 감정을 지니거나, 이랬다저랬다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동물은 없다.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반면, 한국어를 포함해 수많은 언어에서 '개'가 접두어로 붙으면 비하하는 의미나 질적으로 떨어짐을 뜻한다.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를 식용으로 하는 문화도 있었다. 하지만 동물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1인 가구 등이 늘어남에 따라 개를 반려동물이자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식용 등의 실용적 목적을 떠나 개만큼 인간과 정서적으로 긴밀히 밀착했던 동물은 보기 힘들다.구석기시대 얼어붙은 들판을 헤매며 인간을 물어뜯고 해치던 야생 늑대가 인간의 손길에 길들여지게 되기까지 그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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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위엄이 높고, 해와 달처럼 세상을 비추소서' 조선시대를 우리는 양반 사회로 이해하고 있다.실제로 문화를 주도한 계층은 양반이었다.그러나 사회구조로 보면 양반 위로는 왕실이, 아래로는 서민이 있었고, 왕실과 서민은 양반문화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미감의 문화를 나타냈다.단적인 예로 건축에서 궁궐, 양반 가옥, 민가의 차이 같은 것이다.따라서 조선시대의 문화는 양반문화와 함께 왕실문화, 서민문화를 아울러야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왕실문화는 궁중미술에, 서민문화는 민화와 민예품에 잘 나타나 있다.특히 왕실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시대 문화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시대에도 왕실문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양반문화와는 구별되는 권위가 구현되어 있었다.건축, 공예, 회화 등에서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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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람들은 세상의 다양한 생명체를 보면서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했다.그리고 생명체 기원에 대한 신화가 만들어졌다.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지만 대개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이 등장한다.하늘의 자연현상과 땅의 생명현상을 설명하기 적절하기 때문이다.그리스 신화에도 하늘의 신 우라누스 Uranus와 땅의 여신 가이아 Gaia가 등장한다.두 신의 결합으로 나온 자식들 중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가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하지만 그리스 신화보다 의학과 과학에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성경의 '창세기創世記' 신화다.창세기에서는 하느님이 세상을 6일 만에 창조하고 마지막 날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을 만들었다.하지만 하느님이 인간과 생명체들을 만들었다면 하느님은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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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황금 구덩이를 두 번 발견했지요.영광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물에 숨겨진 진실을 위해서요." -아프가니스탄 Afghanistan 황금을 발굴한 고고학자 사리아니디 Victor Sarianidi- 사실 고고학자들이 발굴 과정에서 실수하거나 당황하는 경우는 다반사다.가장 큰 이유는 보이지 않는 땅속을 발굴하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예상치 않은 대형 유물이 발견된다면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침착함이다.하지만 아무리 침착하더라도 실수는 한다.때문에 중요한 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하는 것이다.현장에서의 사소한 실수들은 고고학자들의 숙명이다. ○트로이 황금의 진실 일반인들이 고고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 Heinrich Schliemann(1822~1890)과 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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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懷疑 scepticism(의심을 품음)와 인간 지식의 불확실성은 철의 세기 Iron Century(1540~1660)에 서유럽이 낳은 수많은 문학, 예술의 주요 주제였다.물론 그 시대의 모든 시, 희곡, 회화 등이 모두 같은 메시지 message를 전한 것은 아니다.비범한 문학적·예술적 창조성을 보였던 120년 동안, 천박한 익살극에서 암울한 비극에 이르기까지, 평온한 정적인 삶에서 지극히 격렬한 종교적 순교 장면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에서는 실로 온갖 장르 genre(문예 양식의 갈래)와 경향의 작품이 산출되었다.그 시기의 위대한 작가와 화가는 인간 존재의 양면성과 아이러니 irony—몽테뉴 Montaigne와 파스칼 Pascal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했다—의 실상을 깨닫고 이에 고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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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두발걷기(직립보행)를 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양손의 자유다.문명은 인간의 손끝에서 피어났다.두 손이 자유로워진 인간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고학 연구를 하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유물을 만난다.황금이나 보석처럼 귀한 재료로 만들이전 유물도 눈길을 끌지만, 옛사람들이 남긴 사소한 흔적에서 새로운 학문적 사실을 발견할 때의 희열도 이 일을 하는 즐거움이다.그런 유물 가운데 하나가 옛사람들이 끄적거림이 남아 있는 물건들이다.익명의 필체로 남은 우리 조상들의 낙서落書 doodle/scribble가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국보가 된 꼬마의 낙서 노트 누구나 어렸을 적에 수업 시간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교과서나 공책 귀퉁이에 낙서를 끄적거린 경험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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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받기 싫다면 아무 짓 하지 말고, 아무 말도 마시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시길." -앨버트 허버드 Elbert Hubbard- ○꿈속의 방상시 1945년 해방된 조국의 혼란스러움은 고고학계에도 마찬가지였다.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유물 발굴에 한국인 고고학자의 참여를 거의 허락하지 않았고, 고고학자를 양성하지도 않았다.그들만의 식민지 발굴을 영원히 지속할 줄 알았겠지만, 일본은 갑자기 패망했다.이에 다른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고고학자들은 짐을 싸서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빈 몸으로 부산으로 향했다.유물은 한국인들에게 남겨졌다. 한국 최초의 고고학자 도유호都宥浩 박사는 북한에서 소련이 주둔했던 북한의 문화재를 담당했고, 남한에서는 독일 고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재원金載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