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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진실은 와인에 있다"라는 라틴어 속담은 사람이 와인에 취하면 마음속 진실을 말한다는 뜻이다.한편 또 다른 뜻도 있는데, 와인의 좋은 맛은 쉽게 만들어내기 어렵고, 오로지 좋은 원료와 숙련된 양조 기술이 함께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즉 가장 진실된 기술만이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술을 언제부터 마셨을까 고고학 자료에서 알코올이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만약 있다면 그건 세계의 불가사의에 오를 일이 아닐까.대신에 다양한 간접증거가 그 존재를 증명한다.중국의 상나라 때 제작된 청동예기靑銅禮器(제사에 쓰는 청동 그릇) 중 술주전자와 술잔들이 기록과 함께 잘 남아 있다.이후 춘추전국시대부터는 술과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나온다.한편 고고학적으로 술을 빚은 증거가 최초로 나온 것은..
화가의 기량은 대작大作(규모나 내용이 큰 작품)에 여실히 나타난다.대작은 소품의 아기자기한 멋과 달리 웅혼雄渾(웅장하고 막힘어 없음)하고 장쾌한 기상을 자아내니 이것이야말로 회화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그 점에서 대작을 남긴 화가라야 비로소 대가라고 할 수 있다.우리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를 대가로 말하는 것도 이들이 기량의 출중함을 대작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는 산수화에서 단원 김홍도와 쌍벽을 이룬 이인문李寅文(1745~1824 이후)이 그런 대작의 대가였다.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욱文郁이고, 호는 유춘有春 또는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라고 하였는데 그냥 고송古松으로 불리곤 했다.대대로 사자관寫字官(조선 시대에, 승문원과 규장각에서 문서를 정서正書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
"세상을 바꾸는 신기술 하나가 한 나라를 먹여 살리기도 하고, 다른 나라와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청동기라는 기술은 거대한 하나의 문명을 이룰 만큼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역사책에는 없는 고조선 이야기 역사, 특히 한국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민족의 기원이라는 주제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필자(강인욱)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 민족의 기원을 알고 싶어 역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교과서에 등장하는 환웅과 웅녀의 이야기, 단군 신화, 고조선, 그리고 그 외 국가들의 기원 설화는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있었지만, 이면에 숨은 개국의 의미와 상징을 찾아가는 것도 흥미진진했다.그렇다면 한반도를 거점으로 하는 고고학의 문을 열면서 "한민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
"만일 네가 먼저 잿더미로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니체 Nietzsche,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가운데서- ○불의 사용과 인류의 진화 1991년 11월, 록스타 rockstar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사망 이후 그의 집안은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를 믿는 파르시 Parsi(인도에 거주하는 조로아스터교 신도를 가리키는 말로, 페르시아 사람이란 뜻)라는 것이 알려졌다.전통적인 조로아스터교의 경우 조장鳥葬이 원칙이다.시신을 잘게 해체해서 독수리가 쪼아 먹은 뒤 남은 뼈를 항아리에 담는 방식이다.하지만 그의 가족은 영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고 교회에서 조..
에스파냐 España 지배자들이 저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1450~1506)의 항해 비용을 떠맡기로 결정한 것은 포르투갈 Portugal 모험가들의 행보와 직접 관련되어 있었다.바르톨로뮤 디아스 Bartolomeu Dias가 희망봉을 성공적으로 돌아간 1488년 이후, 포르투갈이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지배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포르투갈과 경쟁관계에 있던 에스파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서쪽 방향으로 항해해서 아시아를 찾아낼 정도로 대담한 인물을 후원하는 일이었다.콜럼버스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무지한 자들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던 몽상가의 이미지―는 사실이 아니었다.실제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늦어도 12세기 이후에는 유..
조선시대 화가 가운데 작품을 가장 많이 남긴 화가는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과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다.현재 전하는 유작만도 몇백 점을 헤아리니 역시 대가답다고 할 만하다.겸재는 금강산 그림을 비롯한 진경산수화와 남종산수화에 집중적으로 몰입해 있었음에 비해 단원은 산수, 화조, 풍속, 인물 등 소재가 아주 다양하고 대작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단원이 작품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출중한 기량 덕분에 공적, 사적으로 그림 주문이 많았기 때문이다.단원은 30대에 이미 인기 화가가 되어 있었다.35세 때인 1779년에는 홍신유가 단원에게 시를 지어주면서 "단원은 나이 서른도 안 되어 그림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고 하였고, 표암 강세황은 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세속世俗(세..
"공동묘지의 언덕 위에서 나는 영생을 갈구하던 영혼들의 얼굴을 보았다."-드미트리 플라빈스키 Dmitri Plavinsky-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2005년 스티브 잡스 Steven Jobs가 스탠퍼드대학교 Stanford University 졸업식 축사에서 이야기한 것이다.보통 "당신이 날마다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다보면 언젠가 당신을 바르게 살 것이다"로 해석된다.하지만 그 말을 듣는 청중들은 웃기 시작했다.그 뜻이 중의적重義的이기 때문이다."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 결국은 당신은 그 말이 맞다는(즉, 죽는다는) 것을 알테니"라는 의미도 된다.이 당시 스..
15세기의 유럽은 서부 지중해와 대서양 세계 쪽으로 식민지 개척 및 상업적 야심의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일부 역사학자들이 상반된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방향 전환은 오스만 제국 세력이 흥기한 결과가 아니었다.오히려 이러한 서부 지향성은 두 가지 상호 연관된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었다.첫째, 중세 말기 유럽에서 아프리카 황금 무역의 중요성이 커졌다.둘째, 서부 지중해에서 유럽의 식민 제국들이 성장했다. ○은 부족 현상과 아프리카 황금 탐색 유럽인은 여러 세기에 걸쳐 무슬림 중간 상인을 통해 아프리카 황금을 거래했다.무슬림 중간 상인은 이 귀금속을 원산지인 니제르 강(나이저 강) Niger River 유역에서 카라반의 힘을 빌려 북아프리카 항구도시 알제 Alger(영어 Algiers)와 튀니스 ..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그림에서 천재天才와 대가大家는 다르다.대가가 다 천재인 것은 아니고, 천재라고 다 대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조선시대 회화사에서 오직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만이 유일한 천재형 대가이다. 오세창吳世昌(1864~1953)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에서 단군 이래 조선시대까지 화가로 이름을 올린 이는 600명 정도 된다.그중 전설적인 대가로는 신라의 솔거率居(?~?)와 고려의 이녕李寧(?~?)이 있고, 조선의 대가로는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1400?~1479?),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단원 김홍도를 꼽는다.천재라는 칭송을 들은 화가로는 나옹懶翁 이정李楨(1578~1607)과 고람古藍 전기田琦(1825~1854)가 있지만 나이 서른에 세상을 떠났다.연담蓮..
한국과 북방지역의 교류를 왜 연구하게 되었는지, 실제로 그것이 중요한지 묻는 사람이 많다.그때마다 필자(강인욱)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대륙과 이어진 부분은 북쪽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한반도 사람들은 바다를 거쳐 일본과 교역하거나 인도와 같은 먼 나라의 문화를 접하기도 했지만, 해상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는 북방에 대한 의존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다 보니 주로 중국, 러시아, 몽골과 같은 나라와 왕래하는 일이 잦았다. 막연하게 북방 유라시아 Eurasia(유럽과 아시아를 아울러 이르는 이름)라고 말하지만, 넓이가 한반도의 수백 배에 달하는 거대한 지역을 그냥 하나로 묶어서 말한다는 것은 정말 애매하다.그래서 필자는 그 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