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글과 그림 (871)
새샘(淸泉)
미확인비행물체(UFO)를 타고 온 외계인을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는가? 이제까지 외계인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외 없이 뾰족한 대머리 형태를 한 생명체를 떠올린다. 사실 이런 이미지는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의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2000년 전 유라시아 초원에서 발흥한 유목민 흉노에서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미지다. 흉노는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것을 길쭉한 머리 형태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가야와 신라에서 저 멀리 서유럽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유목문화의 흐름, 특권을 대물림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바로 편두扁頭 artificial skull deformation에 숨어 있다..
중세 전성기의 중요한 지적 업적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되 상이한 네 분야로 나뉜다. 즉, 초등교육과 평신도 문자 해독률의 확대, 대학의 등장과 확대, 고전 지식 및 이슬람 지식의 획득, 새로운 철학 및 신학 사상의 발전이 그것이다. 이런 업적은 하나하나가 서유럽 학문의 역사에서 중세 전성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입증해준다. 이 모든 업적이 합쳐져서 유럽 지성사의 비범한 한 시대가 출발했고, 그것은 17세기 과학혁명까지 지속되었다. ◎학교의 발달 800년 무렵 샤를마뉴Charlemagne(라틴어: 카롤루스 마그누스대제Carolus Magnus the Great)(재위 768~814)는 제국 내의 모든 주교관구와 수도원에 초등학교의 설립을 명했다. 이 명령이 완전히 시행되었는지는 의문이지만, ..
조선시대 도화서에서 화원을 뽑는 시험을 취재取材라고 하는데 취재에서는 대나무 잘 그리는 것을 제일로 쳤다. 두 과목을 선택하여 시험을 치르면서 대나무에서 통通을 받으면 5점이고, 산수는 4점, 인물과 영모는 3점, 화초는 2점이었다. 그만큼 대나무 그림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사실 먹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묵죽墨竹)은 누구나 그럴듯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잘 그리기는 매우 어렵다. 몇 가닥 줄기를 끊어서 치고는 '대나무 개介'자와 '아비 부父'자를 쓰듯 댓잎을 겹쳐서 표현하면 묵죽의 기본 골격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형태를 갖추었다고 곧 그림이 될 수 없는 것은 글자꼴을 갖추었다고 서예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대나무 그림은 서예와 통하는 바가 많다. 청나라 양헌梁巘(1710~1788)..
'겨울왕국'하면 2013년 전세계 어린이들을 열광시킨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이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같은 낭만적인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반면 우리 고대사로 눈을 돌리면 말갈, 읍루 등 추운 북방에 살면서 주변 지역을 침략한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에서 전해지는 겨울왕국에 대한 믿음은 일부 오해가 있지만, 헛된 망상은 아니었다. 여러 고고학 자료들이 이를 증명한다. 사람들이 '북쪽'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겨울왕국을 찾아 떠나보자. ○그리스인의 유토피아, 히페르보레이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비행기나 배가 사라진다는 버뮤다 삼각지대 Bermuda Triangle, 태평양 한가운데..
유럽의 종교 부흥(1100~1300년) 시토 수도회 설립 동정녀 마리아 숭배 시작 카타르파 이단 등당 발도파 이단 등장 성찬에 관한 새로운 신학 프란체스코 수도회 설립 제4차 라테란 공의회 도미니쿠스 수도회 설립 1098년 1100년 무렵 1140년 무렵 1180년 무렵 1150년 무렵~1215년 1209년 1215년 1216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Gregorius VII(재위 1073~1085)가 앞장선 개혁 운동은 두 가지 이유에서 유럽의 종교 부흥을 자극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교회정화 운동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이제 성직자를 더욱 존경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 되기를 열망했다. 믿을 만한 통계에 따르면, 1066~1200년에 잉글랜드에서 수도 교단에 들어..
충암沖庵 김정金淨(1486~1521)은 조선 중종 때 문신으로 오늘날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제주도 오현단五賢壇(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었거나 관리로 부임하여 그 지방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을 배향했던 옛터)에 모셔진 다섯 분 중 첫 번째 명현이라면 대략 그 위상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충암은 22세 되는 150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일찍부터 관로에 진출했으며 정암 조광조와 함께 신진 사림파를 대표하는 문신이 되었다. 그는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올곧은 말로 상소를 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한때 충청도 보은으로 유배되기 도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다시 등용되어 30대의 나이에 부제학, 이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의 요직을 거쳐 형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1519년 ..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집트 Egypt의 피라미드 pyramid나 페루 Peru의 삭사이와만 Saqsaywaman(Sacsayhuaman 또는 Xacxaguaman) 같은 고대 건축물을 볼 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진 문명이 존재했던 게 아닐까 늘 궁금하다. 그중 땅속에 묻혀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미스터리 건축물이 있다. 4대 문명의 변두리였던 우랄 Ural 산맥 근처에서 발견된 러시아 Russia 아르카임 Arkaim 도시 유적이다. 약 40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유적은 그 넓이가 무려 2만 제곱미터나 되고, 전체 모습은 태양 또는 바퀴를 닮은 원형으로 되어 있다. 내부는 복잡한 담벼락과 도로가 구축되어 있고, 마구간과 대장간이 별도로 있는 등 매우 발달된 도시의 모습을..
◎교황 군주국가의 강화 보름스 협약 Concordat of Worms은 교황과 국왕 사이에 이루어진 하나의 타협이긴 했지만 성직 서임권을 놓고 벌어졌던 서임권敍任權 투쟁은 전반적으로 교황의 승리였다. 그 이유는 서임권 투쟁 결과 서유럽 성직자를 교황 지지 세력으로 결속시켰고, 교황이 성직자단 전체에 대한 사법적 수월성을 갖는다는 주장을 강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서임권 투쟁의 극적인 전개 과정은 유럽 대중의 신앙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한 동시대인이 말했듯, 당시에는 '길쌈하던 아낙네와 작업작의 직공마저도' 서임권 투쟁 말고는 아무것도 화젯거리로 삼지 않았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Gregorius VII(재위 1073~1085)와 그 후계자들은 유럽 평민들에게 성직 매매를 하는 주교, 그리고 결혼한..
1폭 화제 인생본자정人生本自靜(인생은 본디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니) 청정내기진淸整乃其眞(맑고 바른 것이 그 본질이라) 온육형향덕穩毓馨香德(안정되게 길러야 꽃다운 향기가 크니) 하수초여인何殊草與人(어찌 풀과 사람이 다르리) 2폭 화제 순생아줄엽筍生俄茁葉(죽순이 나더니 곧 잎이 자라고) 치장각성죽稚長却成竹(어린 순 자라 다시 대나무가 되네) 관물주공부觀物做工夫(사물을 보는 것을 학문 닦는 일로 삼으니) 여사기진학如斯期進學(이같이 하여 학문의 진보를 바라네) 3폭 화제 남순표불반南巡飄不返(남쪽으로 순행하다 표연히 돌아오지 않으니) 곡제상영황哭帝喪英皇(여영과 아황은 임금을 잃고 슬피 우네) 혈염성반죽血染成班竹(피로 물들여 반점의 대나무가 되었고) 누점양벽상淚霑漾碧湘(눈물이 적셔 푸른 상강에 출렁이네) 4..
신라를 대표하는 유적인 경주 대릉원大陵園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은 경주의 자랑인 동시에 유라시아 최고의 미스터리다. 중앙아시아 일대의 기마민족이 신라보다 앞선 시기에 이와 비슷한 형태의 고분을 널리 사용했기 때문이다. 돌무지덧널무덤은 4세기 무렵 신라가 국력을 키우는 과정에 불현듯 등장해 약 200여년 동안 만들어지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이 문제를 두고 학자들은 지난 100여년 동안 논쟁을 벌여왔다. 아무리 찾아봐도 신라의 고분과 똑같은 형태는 동아시아 어디에도 없다. 중앙아시아의 돌무지덧널무덤과 비교해도 언뜻 보면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많고, 지어진 연대로 보아도 시간의 차이가 크다. 1000년을 이어온 신라의 역사에서 갑자기 끼어든 돌무지덧널무덤 시대 200년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