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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샘(淸泉)
"노년에 발생할 수도 있는 치매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미국 연구진이 장기간에 걸친 추적 연구를 통해 32개의 치매 관련 단백질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고 올 7월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들 32개 단백질을 노년의 치매 발병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 National Institute on Aging 연구진은 많은 사람들을 오랜 기간 추적한 결과, 중년기의 혈액 내 특정 단백질 수치가 불균형을 이룰 때 치매 dementia의 발병 가능성이 높아짐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1만 명이 넘는 참가자의 혈액 시료에서 단백체 proteome(혈액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종류의 단백질)를 분석했다. 참가자들은 30년 동안 ..
전통산수화의 변화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알다시피 전통그림은 오랫동안 '산수山水'가 그 특색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통산수하면 산山과 수水가 한자로 표시하는 우리말의 '경치' '풍경', 영어의 'landscape' 아니냐고 간단히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산수'라는 것은 단순히 산천계곡이 아니라 철학적 개념이 들어 있어서, 중국의 북송北宋(960~1127) 이래 이른바 풍진속세風塵俗世(어지러운 인간 세상)와 대조되는 자연自然의 이념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정市井(사람이 모여사는 곳)에 살면서도 벽에 '산수'를 걸어놓고 이른바 고사高士(산속에 숨어 살며 세속에 물들지 않은 덕망 있는 선비)가 거닐던 자연의 경지를 생각하고 그 속에 노니는 기분을 맛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
일본인의 역사인식은 자기모순적이다.스스로를 '순수한' 단일민족으로 간주하면서도 자기 세력 안의 다른 민족은 끊임없이 부정하고 열등화했다.일본열도에서 1만 년 이상을 살아오던 조몬인(승문인縄文人)이 야요이인(미생인弥/彌生人)들에 동화되어 사라진 것처럼 현대에는 아이누Ainu인들이 철저하게 탄압받으며 변방의 사람들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갔다.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을 열등하다고 간주하면서 집요하게 일본인으로 만들려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다. 홋카이도(북해도北海道)를 대표하는 원주민인 아이누인은 7세기 무렵 '에미시(하이蝦夷, '에조'라고도 함)'라는 이름으로 일본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아이누인은 1500년 가까이 일본인들과 큰 충돌 없이 살았다.하지만 1869년 메이지유신(명치유신明治維新)과 함께 일본은 이 ..
9세기와 10세기에 아바스 칼리프국 Abbasid Caliphate(아바스 왕조 Abbasid Dynasty)이 쇠퇴하자 비잔티움 제국 Byzantium Empire의 세력은 팽창했다. 9세기 중반 비잔티움의 입지는 불안했다. 무슬림 함대가 시칠리아 Sicilia(영어: Sicily)와 크레타 Crēta(영어: Crete)를 함락했고, 이교도인 슬라브족 Slavs의 발칸 반도 Balkan Peninsula로의 이주는 발칸 지역에 대한 비잔티움의 지배권을 급속히 잠식했다. 제국의 동쪽 경계선은 8세기 초와 달라지지 않았지만 변경에 대한 무슬림의 압박은 계속되었다. 흑해 Black Sea와 카스피해 Caspian Sea로 흘러가는 러시아 하천망을 따라 입지를 확보한 바이킹 Vikings(루스족 Rus) 침입..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내준 전시회 도록을 여기 오기 전 훑어 보았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전시된 회화의 역사적 의미나 내용에 대해선 안휘준 교수와 이구열 선생의 훌륭한 글이 있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어차피 여러분도 그 글을 보실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대로 중복을 피하여고 하면서 앞서 말씀드린 명강연의 본을 따라 혀가 돌아가는 대로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아리송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런데 먼저 서론격으로 여러분에게 몇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기나라 자기민족의 그림을 볼 때는 알게 모르게 애국적 또는 애족愛族적 입장에 서게 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나는 소년 때부터 그림보기를 좋아했는데 때는 일제강점기라, 이왕이면 우리나라 그림을 방에 걸어 놓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가짜..
"회회回灰아비가 내 손을 쥐더이다" 고려가요 은 만두가게를 하는 위구르 Uighur인(몽골고원에서 일어나 뒤에 투르키스탄 지방으로 이주한 튀르키예계의 유목 민족)과 고려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흉노의 후예를 자처했던 신라에서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면서 국제화는 더욱 심화되었다.고려는 적극적으로 서역인西域人(서역은 중국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들의 귀화를 장려했고, 그들은 고려에 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우리의 삶에 함께했다.하지만 조선 건국 이후 대외적으로는 소중화小中華(작은 중국)를, 내부적으로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서양 계통의 사람들을 타자화他者化(어떤 사람을 공동체에서 소외시킴으로써 분리된 객체로 격하시키는 모든 행위)하기 시작했다.약간이라도 코가 높거나 ..
농업혁명은 중세 전성기 상업혁명의 기반이었다. 새로운 상업 발전의 토대는 9세기와 10세기에 마련되었다. 1000년 무렵 작센 Sachsen(영어 Saxony)의 하르츠 Harz 산맥에서 캐낸 은은 잉글랜드 England, 플랑드르 Flanders, 라인란트 Rhineland 세 지역 사이의 삼각무역을 활성화시켰다. 즉, 잉글랜드의 양모 원사는 플랑드르로, 플랑드르의 모직물은 라인란트로 운반되었고, 라인란트의 상인은 그것을 멀리 이탈리아 Italia와 비잔티움 Byzantium에 내다 팔았다. 북해 North Sea 일대에서는 몇 백만 개의 은화가 유통되었고, 북해 인근에는 잉글랜드, 스칸디나비아 Scandinavia, 라인 Rhine 강 유역 등지에서 유통되는 화폐를 교환해주는 통합 환전 체계가 발달했..
그림의 역사인 회화사繪畵史란 기본적으로 작품을 그 대상으로 한다. 개개의 작품을 빼놓고서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개개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은 작가한테서 나오는 것이므로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세상일은 참 묘하다. 그러면 작가 마음대로 그림이 그려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화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잘 그리려고 하면 잘 안 그려지고, 어떡하다가 그리면 잘 그려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창작의 신비라고들 하는 것이다. 결국은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 마음대로 안 되면서 작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작가의 창작물밖에 될 수 없는 그런 점이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작품 가운데는 그 기술, 기량을 견주는 그런 그림을 반대하는 문인화같은 화풍도 있었다. 그렇기 때..
별다른 의사 자격시험이 없었던 그리스·로마 시대에 의사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사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유명세를 갖고 있는 의사들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자신들만의 학파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교조학파, 경험학파, 방법학파 등 많은 의학파가 난립해 저마다 자신들의 치료 이론이 옳다고 주장했다. 난세에는 영웅이 나오는 법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한방에 정리하고 우뚝 선 명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 Claudios Galenos(129~199?)였다. 갈레노스는 서양 의학에 가장 오랫동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서양 의학의 발달은 곧 갈레노스 의학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어떻게 한 의학자가 세운 이론이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오가며 종교와 맞먹는 권위..
서양사에는 중세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란 용어가 있다. 이는 4~6세기에 강력한 기마문화를 가진 훈족族 Huns이 유럽을 침략하면서 연쇄적으로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 민족 Germanic peoples의 활동에서 유래했다. 유라시아 Eurasia(유럽Europe과 아시아 Asia를 하나의 대륙으로 보는 이름) 고고학에서는 이 시기를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부른다. 게르만족 Germanic이 아니라 유라시아 동쪽 흉노匈奴 Huns에서 시작한, 유라시아 전체를 뒤흔든 변혁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한반도의 동남쪽 신라에서는 북방계의 화려한 황금과 고분이 등장했으며, 유라시아 각 지역에서는 흉노의 후예를 자처한 다양한 나라가 생겨났다. 최근 고고학과 유전자 분석으로 흉노에서 훈족으로 이어..